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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 자서전 Sep 05. 2022

거북을 변호하다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읽는 동화

     나는 돌멩이입니다. 까맣게 보이는 돌멩이입니다. 돌멩이는 단단하지만, 돌멩이도 상처를 입습니다. 얘들이 높은 데서 떨어뜨리거나, 돌팔매질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돌멩이도 상처를 입습니다. 나는 진짜 돌멩이는 아니지만, 나를 싫어하는 얘들을 보면 돌멩이가 됩니다. 내가 돌멩이일 때는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움직이지도 않고 숨을 죽이고 가만히 엎드려 있습니다. 그러면 얘들은 나를 몰라보고 그냥 지나갑니다. 그제야 나는 움직입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전령의 신으로 지상에서부터 지하까지 가지 못하는 곳이 없다는 헤르메스는 내 등짝으로 수금의 울림통을 만들어 수금을 연주했습니다. 그래서 아폴론과 화해를 했습니다. 나는 그렇습니다. 나는 잘 이용하는 사람에게는 오래도록 그에게 노래를 선물할 수 있고, 사람들 사이에 화평을 가져다줍니다. 그게 나의 특징입니다. 하지만 나를 잘 모르는 사람은 나를 잡아서 자신의 배를 채우려 합니다.

  많은 사람이 생존경쟁을 한다고 하지만 결국 강자가 승리하게 되는 구조입니다. 그래도 헤르메스는 내가 노래하도록 했습니다. 그건 나에게 작은 위안입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나는 나대로 살게 해 주는 겁니다. 내가 가진 여러 장점을 살려 살 수 있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거북입니다. 내 팔과 다리는 짧습니다. 너무 짧아서 보이지도 않습니다. 얼굴도 작디작아서 볼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그 짧은 팔과 다리, 얼굴도 나를 싫어하는 애들 앞에선 감춥니다. 그런 애들 앞에선 위축됩니다. 나는 이렇다 내 세울만한 게 없습니다. 엄마는 나를 모래사장에 낳고 가버렸습니다. 나는 홀로 바닷가를 찾아 물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나마 물속이 안전할 것 같았지만 물속에도 나를 못살게 구는 얘들이 많았습니다. 물고기들이 나를 잡아먹으려고 입을 벌리고 있었습니다. 나와 같은 꼬맹이들은 물고기 밥이 되는 게 많았습니다. 나는 무서워서 몸을 움츠리고 작은 풀숲 구석을 찾아 들어갔습니다.

  나는 어려서부터 혼자 살아야 했습니다. 육지에서는 걷기도 힘들지만 깊은 물 속에서 헤엄을 치면 육지에서보다는 빠르게 움직일 수 있습니다. 나는 물속에서 삽니다. 햇빛보다는 물빛이 좋습니다. 많은 이들이 모인 곳보다는 조용한 곳이 안전합니다.


  육지로 나갔다가는 위험합니다. 제일 위험한 일은 사람을 만나는 일입니다. 사람들은 나를 장난감처럼 생각합니다. 나를 뒤집어 놓으면 나는 하늘을 보면서 죽어갑니다. 사람들을 만나지 않아도 해변에선 위험한 일이 또 있습니다. 사람들이 깨버린 소라껍데기, 깨진 유리병, 찌그러진 깡통이 있습니다.

  나의 등은 돌멩이처럼 단단하지만, 뱃가죽은 연하고, 약합니다. 뱃가죽에 깨진 유리병이 닿으면 치명상을 입습니다. 아주 어렸을 때 누가 해변에 버린 참치 캔 뚜껑에 나의 약하고 연한 뱃가죽이 찢어졌습니다. 그때의 아픔은 나에게 외상外傷과 함께 깊은 내상內傷이 되었습니다. 커서 입은 상처보다 어려서 입은 상처가 더 오래갑니다.

  거북이들이 열에 하나는 어렸을 때 상처를 입습니다. 그 절반은 어렸을 때 겪습니다. 때문에 인적이 드물고 오염이 되지 않은 곳을 좋아합니다. 사람도 순수한 사람이 좋듯이 모래밭도 자연 그대로의 모래만 있는 곳이 좋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곳을 찾기가 매우 힘듭니다.

  사람들은 내 딱딱한 등껍질은 눈을 감아도 그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 뱃가죽을 본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나를 깊이 이해하려면 나의 속 모습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그래도 그런 곳을 찾아야겠습니다. 가장 좋은 건 우리 또래들이 모여 있는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안전하기는 하지만 멋진 풍경도 보기 어렵고, 재밌는 걸 느끼기도 어렵습니다. 우리와 다르지만, 때론 겁나지만 밖에서 혼자 내가 모르는 곳을 찾아다닐 때 느끼는 재미가 있습니다. 그런 세상을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그렇게 혼자 돌아다니는 게 좋습니다.

  나는 물속에 살아도 뭍에 사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우리 선조들이 그랬습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여러 사람의 말이 쇠도 녹인다.’고 했습니다. 이제 바닷속의 짐승이 어찌 여러 사람의 입을 두려워하지 않겠습니까? 백성들을 모아 노래를 지어 부르면서 막대기로 언덕을 치면 부인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고려 시대 일연 스님이 지은 삼국유사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신라의 순정공이란 관리가 강릉 태수로 부임하던 길에 동해 용이 ‘아름다운 부인’ 수로水路를 납치하자 한 노인이 던진 말입니다. 이때 막대기를 두드리며 부른 노래가 ‘해가海歌’입니다. “거북아 거북아 수로 부인을 내놓아라… 네 만약 거역하고 내어 바치지 않으면 그물을 넣어 사로잡아 구워서 먹으리라.”

  결국, 순정공이 뭇 사람의 입 덕분에 부인을 구했듯이 중구衆口의 힘은 세고 무섭습니다. 또한, 중구는 막기도 어렵다고 해서 ‘난방難防’이라 했습니다. ‘중구난방’의 뜻이죠. 즉 여러 사람의 입의 말은 막기도 어렵다는 겁니다. 또 그 말로 인한 결과도 예측할 수 없다는 거겠죠. 여러 입이 좋은 뜻이면 괜찮겠지만 반대이면 죽음조차도 피할 수 없습니다.


  옛사람이 뭇 사람의 입을 경계한 까닭이죠. 조선조 학자 정약용이 우리나라 241개 속담과 170여 개 중국 속담을 모은 ‘이담속찬耳談續纂’에 나오는 말도 그렇습니다. ‘여러 사람에게 손가락질받으면 병이 없어도 죽는다’(千人所指 無病而死)라는 말입니다.      

  나는 딱딱한 갑옷에 발도 느리고 얼굴도 변변치 못하지만 내 마음은 내 연하디연한 뱃가죽과 같습니다. 뭇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다가 내 속도 까맣게 될 때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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