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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 자서전 Dec 15. 2022

미래 예측

진로 상담

 

저는 1960년 초반에 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당시는 국가에서 공업을 외치고 있던 때였습니다. 당시 신문은 공업 입국이란 제목을 대서특필하고 대학교에는 공과대학이 인기가 있었습니다. 그때는 공업고등학교도 경쟁률이 높았습니다.

 의과대학은 지금이나 그때나 인가가 많았습니다만, 한의학과는 인기가 없었습니다. 지금은 경희대학교 한의학과가 인기학과입니다. 경희대학교의 예전 이름은 신흥대학교였고, 한의학과가 없었습니다.

 유일한 한의학과 교육기관이 ‘동양의과대학’입니다. 이 학교에 배구부가 있었습니다. 그때 배구를 하던 선수들도 한의사가 되었습니다. 이 학교가 경희대학교와 합쳐지면서 경희대학교는 한의학과의 유명대학이 되었습니다.   60년대엔 인기가 없던 한의사가 지금은 인기 직업입니다


우리 고조할아버지는 한의(韓醫)를 했습니다. 동학란 때 지금의 ‘의무관’으로 참전을 했습니다. 당시는 지금과 같은 한의원이 아니라 한약방과 침술원이 있었습니다. 둘 다 할 수도 있고 하나만 하는 예도 있었습니다. 고조할아버지가 참전 후 신설동에서 한의원을 개원했습니다. 이 한의원은 ‘벙어리 한의원’이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귀가 안 들리는 환자가 왔답니다. 할아버지가 보니까 귓병으로 고름이 잔뜩 끼었답니다. 당시는 이비인후과가 없었기에 현대적인 치료가 불가능했습니다. 고름을 빼낼 방법도 없었습니다. 할아버지가 생각해낸 것이 귀에 입을 대고 빨았답니다. 부항으로 빼내기도 했답니다. 이후에 한의원이 ‘벙어리 한의원’이라는 별명이 붙었다고 합니다. 어렸을 때, 하얀할머니(고조를 하얀 할머니라고 불렀음)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   

  

 고등학교 때, 아버지는 나를 공과대학을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한양대학교 기계과를 갔습니다. 그런데 가고 보니 적성에 안 맞아 그만두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동양의과대학을 갔었더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랬으면 할아버지의 가업도 계승할 수 있었겠지요. 저는 처음 진로를 잘못 잡아 고생했습니다. 공부만큼 중요한 게 적성에 맞는 미래 예측 능력이 아닐까요?


 학교 공부는 미래 예측보다는 현실에 안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녀의 적성을 알고 진로지도를 하면 효율적인 직업선택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22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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