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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정 중독, 행위 중독

최서방에게 보내는 편지

by 마음 자서전


호진이가 밤늦게까지 게임이나 유튜브에 빠져 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자네도 일로 피곤할 텐데, 호진이까지 그러니 마음이 많이 쓰일 겁니다. 이를 꾸짖거나 판단하려는 게 아니라, 이 시기를 이해하고 함께 넘기기 위한 마음으로 이 편지를 씁니다.


호진이의 정서적 환경 이해하기

호진이는 형제자매가 없고, 엄마는 우울로 정서적 반응이 줄고, 아빠는 바빠서 상호작용이 적은 상황이지요. 이런 환경은 아이에게 “정서적 고립감(emotional isolation)”을 형성합니다.

정서적 고립은 아이의 마음을 관계보다 자극에 의존하게 만드는 토양이 됩니다. 즉, 외로움을 느낄 때 부모 대신 화면을 찾게 되고, 그 반복이 중독으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행위를 ‘끊게’ 하는 것보다 ‘함께 연결감을 회복하게 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호진이의 모습은 단순한 버릇이 아니라 심리학에서 말하는 행위중독(behavioral addiction),

또는 과정중독(process addiction)에 가까운 현상이라 생각합니다.


이건 술이나 약물처럼 몸에 넣는 물질이 아니라, ‘행동 그 자체’가 뇌의 보상회로를 자극해 중독되는 상태를 말합니다. 즉, 게임이나 유튜브를 할 때마다 도파민이 분비되고, 그 쾌감이 불안과 외로움을 잠시 덮어주기 때문에 그 행동을 반복하게 되는 것이죠.


겉으로 보면 자기중심적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자기상실적입니다.

즉, “자기만 생각하는 아이”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아이”예요. 자극을 통해 ‘안정감’을 얻지만, 그 안에는 “나는 괜찮은 사람일까?” “누가 나를 봐줄까?” 하는 깊은 외로움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호진이의 행위를 억제하려는 시도보다는

안정감과 연결감으로 회복의 방향을 만들어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부모가 함께 실천할 수 있는 회복의 방법들

1. 하루 10분이라도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 만들기

매일 딱 10분이라도 괜찮습니다. 비판하거나 가르치려 하지 말고, 그저 “듣는 시간”으로 만들어보세요. 아이의 말을 끊지 않고, 맞장구치며 들어주는 그 10분이 ‘나는 존중받는 존재’라는 자기감(self-worth)을 키웁니다. 이건 중독의 핵심 원인인 ‘정서적 결핍’을 채워주는 가장 간단하고 강력한 심리적 치료입니다.

심리학적 근거:

정서적 유대(attachment bond)는 도파민 대신 옥시토신을 분비해 불안을 진정시키고 충동을 낮춥니다. 즉, “듣기 중심의 10분 대화”는 중독의 생리적 루프를 완화하는 ‘뇌의 재훈련’이에요.

2. 아침밥을 함께 먹기 (최소한 아빠와 호진이만이라도)

가족이 함께 식사하는 시간은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관계적 안정감의 일상적 의식(ritual)입니다. 특히 아빠와 아들이 함께 밥을 먹는 건 “하루를 함께 시작한다”는 신호가 되어 아이의 불안을 줄이고 하루 리듬을 회복시킵니다.

심리학적 근거:

일상의 반복적 공동행위(같은 시간·장소·리듬)는 아이의 뇌에 ‘예측 가능성(predictability)’을 형성해 충동과 불안 조절 능력을 강화시킵니다.


3. 가족이 함께 심리상담 받기 (최소한 아빠와 함께)

호진이를 혼자 상담소에 보내는 것보다 부모나 가족이 함께 참여하는 상담이 훨씬 효과적입니다.

행위중독은 개인의 문제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가족 관계 안에서 형성된 정서적 패턴의 표현이기 때문이에요. 아이는 가족의 분위기, 엄마의 우울감, 아빠의 부재, 그리고 자신이 느끼는 책임감과 외로움을 행동으로 표현합니다.

그래서 가족이 함께 상담받을 때, 문제의 ‘뿌리’를 다루는 진짜 회복이 시작됩니다.

심리학적 근거:

가족 상담(family therapy)에서는 중독을 ‘체계적 현상(systemic phenomenon)’으로 봅니다. 즉, 한 사람의 증상은 가족 전체의 긴장과 불안을 대신 표현하는 신호라는 것이죠.

가족이 함께 상담받을 때, 호진이는 “내가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 함께 회복할 수 있는 가족의 일원”임을 경험합니다. 이것이 바로 중독의 순환을 끊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4. 함께 움직이고, 함께 느끼기 – 운동·음악·자원봉사

주말마다 등산, 달리기, 탁구, 배드민턴, 댄스 같은 가벼운 운동을 하세요. 몸을 움직이는 경험은 감정조절과 집중력 향상에 직접적인 도움을 줍니다.

음악을 통해 감정을 표현하는 시간도 좋아요. 함께 노래를 듣거나 악기를 배우면서 “감정 표현의 안전한 통로”를 열어주세요.

자원봉사활동은 자극의 쾌감 대신 관계의 의미를 보상으로 주는 치료적 활동입니다. 노인복지관, 환경정화, 도서관 봉사, 유기동물 보호 등 가족이 함께할 수 있는 작은 봉사부터 시작하면 좋겠어요.

특히 자원봉사활동은 대학 진학 시 생활기록부나 자기소개서에서 사회적 책임감과 협동심을 보여주는 긍정적 지표로 평가됩니다. 호진에게는 삶의 의미를 찾는 동시에 미래를 준비하는 길이 될 겁니다.

중독의 반대는 ‘절제’가 아니라 ‘연결(connection)’입니다. 호진이가 게임 속에서 얻고 싶은 건 승리가 아니라 “관심과 소속감”이에요. 그래서 가족이 함께 웃고, 듣고, 밥을 먹고, 상담을 받는 것이 그 어떤 약보다 강력한 치유가 됩니다.

최서방!,

자네가 좋은 아버지가 되려 애쓰는 걸 알고 있어요. 아이의 회복은 아버지의 존재에서 시작됩니다. “같이 하자”는 말 한마디가 호진이 마음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될 거예요.

나는 할아버지로서 일주일에 한 번 호진이에게 손편지를 보내며 그 마음속에 “너는 혼자가 아니다”라는 말을 전하려 합니다. 자네도 그 곁에서 따뜻한 등불이 되어 주길 바랍니다.

항상 응원합니다.

25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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