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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씹는 마음

식사와 명상

by 마음 자서전

아내에게

여보, 당신이 밥을 먹다가 혀를 깨물었다며 입을 열었을 때, 그 검붉은 혀끝이 내 마음을 덜컥 내려앉게 했습니다. 나도 얼마 전 밥을 먹다가 입술을 깨물었어요. 요즘 입술을 깨무는 횟수가 많아졌어요. 예전에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오늘은 이상하게 마음이 무겁더군요.

이제 우리 몸은 예전처럼 민첩하지 않습니다. 밥알 하나를 씹는 데에도 혀가 굳고, 입이 따라주질 않습니다. 젊을 땐 몸이 먼저 움직였는데, 이제는 생각이 앞서고, 몸은 뒤따라오지 못합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어요.

‘이러다 혀가 내 마음대로 움직이질 않으면 어쩌지?’


예전에 읽었던 《알아차림 명상》에서 다음과 같이 쓰여 있더군요.

“음식이 차려진 식탁에서 감사하는 시간을 갖는다.

(1) 음식을 바라본다.

(2) 먹고자 하는 마음 또는 음식에 강하게 집착하는 마음을 집중한다.

(3) 입안에 침이 고이는 상태에 집중한다.

(4) 음식을 먹기 위해 손을 뻗거나 식사 도구에 손을 뻗는 과정에 집중한다.

(5) 음식을 입에 넣는 과정에 집중한다.

(6) 음식을 씹으며 맛에 집중한다.

(7) 맛과 연합된 생각 또는 감정의 일어남과 사라짐에 집중한다.

(8) 입속 혀의 움직임과 음식의 질감 변화에 집중한다.

(9) 입안의 음식이 다 없어지기 전에 다른 음식을 먹고자 하는 마음에 집중한다.

(10) 음식을 충분히 씹지 않고 급하게 넘기고 다른 음식을 먹고자 하는 마음과 다른 음식을 집어 올리는 과정에 집중한다.

(11) 입안의 음식이 다 없어질 때까지 식사 도구를 내려놓고 씹는 느낌에 집중한다.

(12) 집중을 통해 식사 속도가 조절되고 양이 조절되는 느낌에 집중한다.”

(권수련, 《알아차림 명상》, 아힘사, 2018, p.216)


그 구절을 한 줄씩 따라 읽으며 오늘 저녁 식탁에 앉았습니다.

밥알 하나, 국 한 숟가락, 반찬 한 젓가락을 천천히 바라보았습니다.

숟가락을 드는 손끝의 움직임, 입안에 고이는 침, 혀가 밥알을 굴리고 씹어내는 그 미세한 순간들을 느껴보려 했습니다.

‘입속 혀의 움직임과 음식의 질감 변화에 집중한다’라는 말처럼, 내 혀의 느림을 탓하지 않고 그저 지켜보았습니다. 그리고 ‘입안의 음식이 다 없어질 때까지 식사 도구를 내려놓는다’라는 구절을 떠올리며 숟가락을 잠시 내려놓았습니다. 그 짧은 멈춤 속에서,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졌습니다.

여보,

이제야 알겠어요. 음식을 천천히 씹는다는 건,

몸의 늙음을 받아들이는 일이며, 삶의 남은 시간을 음미하는 일이라는 걸요.

우리가 함께 앉아 밥을 먹는 이 시간이 그저 식사가 아니라, 하나의 명상이 되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밥을 천천히 씹는 동안 나는 당신의 숨결과 움직임을 알아차리며 이렇게 마음속으로 감사의 말을 되뇝니다.

“여보, 오늘도 당신 덕분에 밥을 먹을 수 있어서 고마워요.”

혹시 언젠가 내가 말을 잃게 되더라도 이 마음만은 잃지 않겠습니다.

혀가 멈추어도, 마음은 여전히 말을 할 테니까요.

당신의 남편이,

오늘도 밥알 하나하나를 천천히 씹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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