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먼저 필요한 책임
어제 도서관에서 <아이 엠 샘> DVD를 대출해서 집에서 관람했다.
영화 속의 샘은 지적장애를 가진 아버지다.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그는 매우 부족하다. 돈도 없고, 이해력도 떨어지고, 법적 절차조차 스스로는 감당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그는 하나만큼은 누구보다 강하게 지키려 한다.
“나는 딸 루시의 아빠다.”
그 진심 하나로 그는 흔들리는 세상과 맞서 싸운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이 지능인지, 능력인지 묻는다면 샘은 말없이 행동으로 답한다.
그에게 부모 됨은 ‘조건’이 아니라 책임의 출발점이다.
하지만 현실은 종종 그 반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지적장애가 아닌 사람들이, 능력도 있고 선택할 힘도 있는 사람들이 정작 아이를 책임지지 못하는 일들이 있다.
한국에서는 필리핀 ‘코피노(Kopino)’ 문제가 오랫동안 사회적 고민으로 남아 있다. 한국 남성들이 필리핀에서 교제하거나 잠시 머무는 동안 아이를 낳고도 그 아이를 외면한 채 돌아가는 일들이 반복되었다. 그 아이들은 국적도, 보호자도, 지원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생애 첫 순간부터 ‘버려짐’을 경험한다. 그 아이들의 어머니는 홀로 생계를 책임져야 하고 아이들은 학교에도 제대로 못 가며 사회적 편견 속에서 자라난다.
여기서 우리는 묵직한 모순 하나를 마주한다. 부족한 능력을 가진 샘은 끝까지 아빠 이려 하고, 능력 있는 일부 사람들은 쉽게 아빠이기를 포기한다.
부족함이 사랑을 가로막는 것이 아니라, 책임을 회피하는 마음이 아이를 고독하게 만든다는 사실이 더 분명해지는 순간이다.
샘이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것은 ‘양육 기술’이 아니라 “네가 혼자가 아니라는 약속”이었다.
반면 코피노 아이들, 또는 한국에서도 양육하지 못하고 떠나는 부모들이 남기는 것은 아이들에게 지울 수 없는 “나는 버림받을 수 있는 존재인가?”라는 질문이다.
* 도망치지 않는 마음
* 책임을 외면하지 않는 자세
* 아이의 존재를 인정하는 용기
이 세 가지로 결정된다.
영화 속에 있는 샘은 지적장애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는 자신의 부족함을 사랑으로 채우려 했다. 반대로 코피노 문제에서 드러나는 무책임은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마음의 책임을 선택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상처다.
아이를 사랑하는 능력은 IQ로 측정되지 않는다. 국적의 차이도, 혈통의 조건도 아니다.
아이가 “내 존재가 가치 있다”라고 느끼게 해주는 것이 부모의 첫 번째 역할이다.
샘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 사실 때문에 끝까지 흔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능력이 아니라 사랑으로, 조건이 아니라 책임으로 부모가 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