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문제를 만들지 않는다

말로 하지 못한 마음

by 마음 자서전

지난주에 고교 동창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예전부터 일 년에 한두 번 통화는 하던 사이였다. 만나서 식사를 하자고 했다. 종로5가에 육회를 잘하는 집이 있다며 다음 주에 다시 전화하겠다고 했다. 며칠 뒤, 다시 전화가 왔다. 이번에는 청량리에서 만나잔다. 뷔페를 잘하는 곳이 있단다. 시간약속을 하고 청량리로 갔다. 60년 만에 만나는 친구였다.


얼굴을 보니 몰라보겠다. 목소리는 예전과 다름없는데 얼굴은 많이 늙어 있었다. 고생을 많이 한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이 물려준 땅이 퇴계원에 있었는데, 개발이 되면서 적지 않은 돈을 받았다고 했다. 그 돈을 은행에 맡겨 이자를 받아 생활하고 있단다. 수용되지 않은 300여 평의 밭도 있어, 집에서 먹을거리를 심으며 소일거리 삼아 지낸다고 했다.

이 친구의 가족사다. 십여 년 전에 이혼을 했고, 혼자 살다가 지금은 딸과 함께 산다고 했다. 사위가 바람을 피워 이혼을 하게 되었단다. 외손주가 둘 있는데, 중학생 외손녀와 초등학교 4학년 외손자가 있다고 했다.

문제는 외손자였다. 학교에 가기 싫다며 아예 안 가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학교 가기 싫으면 집에서 나가라”

고 말하며 집에서 내보냈다고 했다. 그랬더니 몇 주는 학교를 가더란다. 또 한 번은 화장실에 들어가서 나오지 않기에, 화장실 전등을 껐다고도 했다. 하루 종일 핸드폰으로 게임만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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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외손자가 정서적으로 결핍이 돼서 그런 것 같아. 그런 식으로는 안 좋아. 부족한 정서를 채워줘야지.”

그리고 심리상담을 받아보라고 권했다. 외손자 혼자만이 아니라, 엄마와 할아버지도 함께 받아보는 게 좋겠다고 덧붙였다.

식사 이야기를 하다 문득 이런 말도 꺼냈다.

“나는 손주 네 명에게 매주 손편지를 써서 보내는데, 네 외손주에게도 내가 편지를 써서 보내줄까?”

“아니야, 그건 하지 마.”

짧은 말이었지만, 그 안에는 여러 마음이 섞여 있는 듯했다. 고마움일 수도, 부담일 수도, 혹은 아직 꺼내 보이고 싶지 않은 가족의 사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는 묻지 않았다.

뷔페는 대기 줄을 서서 한참을 기다린 뒤에야 들어갈 수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면서도 내 마음은 편치 않았다. 그 아이가 걱정되었다. 그렇게 자라 성인이 되었을 때, 세상과 맺는 관계는 어떠할까. 성격장애라는 말이 스쳤지만, 그것은 진단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방향에 대한 염려였다.

친구와 헤어진 뒤, 영화관에서 <아바타: 불과 재>를 3D로 관람했다. 세 시간이 훌쩍 넘는 상영시간 동안, 입체적으로 밀려오는 화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기술은 이렇게까지 발전했는데, 사람의 마음은 왜 여전히 다루기 어려운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화면 속 세계는 찬란했지만, 내 머릿속에는 여전히 청량리에서 들었던 한 아이의 이야기가 남아 있었다. 그리고 말로 건네지 못한, 아직 써지지 않은 편지 한 통이 마음속에 머물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