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명조끼를 쥔 채 사람 앞에 서는 일

심리상담은 언제 사람을 잃는가?

by 마음 자서전

상담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자라난다.

그리고 그 성장은 단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토머스 스코볼트는 《건강한 상담자만이 남을 도울 수 있다》에서 이 사실을 놀랄 만큼 정확하게 짚는다. 그가 말하는 인습적 단계에서 상담자는 아직 ‘전문가’가 아니다. 이 단계에서 타인을 돕는 능력은 교과서에서 온 것이 아니라 삶에서 온다. 형이 동생에게 집안일을 알려 주듯, 가르친다는 자각도 없이 자기 삶에서 익힌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돕는다. 이 과정에는 자의식도, 자기성찰도 거의 없다. “내가 잘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조차 아직 등장하지 않는다. 돕는다는 행위는 기술이 아니라 습관이고, 태도이며, 삶의 연장이다.

Thomas M. Skovholt

그러나 전문적 세계로 들어서는 순간, 이 자연스러움은 흔들린다. 스코볼트가 말한 ‘전문적 훈련기로의 이행 단계’는 바로 그 흔들림의 시기다. 인습적인 세계와, 엄격한 기준과 평가가 요구되는 전문 세계를 잇는 다리. 이 다리를 건너는 과정에서 상담자는 불안을 경험한다. 자기 방식이 더 이상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자각하기 때문이다.


이후 도달하는 ‘대가 모방 단계’에서 상담자는 비로소 이론과 기법을 손에 쥔다. 새로운 연구, 체계화된 이론, 검증된 접근법들이 쏟아진다. 스코볼트는 이 상태를 ‘구명조끼를 붙잡고 수영하는 것’에 비유한다. 구명조끼는 생존에 필요하다. 그러나 진정한 발달은, 언젠가 그것 없이도 물에 뜰 수 있음을 아는 데 있다. 그래서 이 단계의 중심 과업은, 불안에 압도되지 않도록 보호받으면서도 점차 그 보호에만 매달리지 않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이 발달 모델이 말해 주는 핵심은 분명하다. 상담자의 성장은 기술 습득의 문제가 아니라, 불안을 다루는 방식의 문제라는 점이다. 불안을 견디지 못하면 상담자는 이론에 매달리고, 불안을 견딜 수 있을 때에만 이론을 내려놓을 수 있다.

선진국의 상담 수련 체계는 이 점을 제도적으로 반영해 왔다. 미국과 유럽에서 상담자는 충분한 개인치료와 장기간의 슈퍼비전을 거친다. 이는 단순히 기술을 연마하기 위한 절차가 아니다. 구명조끼에만 매달린 채 사람 앞에 서지 않도록 하기 위한 장치다. 이론에 숨지 않고, 자기 불안을 자각한 상태로 내담자를 만날 수 있도록 돕는 구조다. 그래서 선진국의 수련은 상담자의 발달 단계를 단축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충분히 머물게 한다.


반면 한국의 현실은 다르다. 상담자 양성은 종종 ‘빠른 전문화’를 목표로 한다. 자격증 취득이 곧 전문성의 증명처럼 여겨지고, 구명조끼를 벗는 시점에 관한 질문은 거의 제기되지 않는다. 이론은 빠르게 주어지지만, 그것을 내려놓을 수 있을 만큼의 자기성찰과 개인적 숙성은 충분히 보장되지 않는다.

그 결과, 상담 현장에는 구명조끼를 꽉 움켜쥔 상담자가 늘어난다. 불안을 다루기보다는 가리고,

모름을 견디기보다는 설명으로 채운다. 상담은 만남이 아니라 적용이 되고,

내담자는 한 인간이 아니라 사례가 된다.


스코볼트는 이를 조용히 경고한다. 아직 물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구명조끼를 붙잡는 것은 필요하지만,

그 상태로 평생 수영을 가르칠 수는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상담자의 발달은 단계의 문제가 아니라,

그 단계를 존중해 주는 문화와 제도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래서 상담자에게는, 이론 이전에 자기 자신의 마음을 직접 겪어 본 경험이 필요하다. 타인의 고통을 이해한다는 것은 책으로 배운 개념이 아니라, 자기 삶의 어느 순간에서 무너지고 회복해 본 기억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자기 감정을 모른 채, 타인의 감정을 다룰 수는 없다.


미국의 상담자 교육 과정에서는 상담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매주 자신의 심리 상태를 기록한 경험보고서를 제출하게 한다. 교수는 그 보고서에 코멘트를 달며, 학생이 자기의 감정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함께

살핀다. 이는 상담을 잘하기 위한 훈련이기 이전에, 사람 앞에 설 준비를 하는 과정이다.

박상미 교수

의미치료의 권위자로 알려진 박상미 박사는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독일에서 연구 생활을 하던 시절, 그는 연구실과 집만 오가는 단조로운 생활 끝에 우울 상태에 빠졌다.

독일의 한 연구원은 ‘우울증에 좋은 약’이라며 약을 건네고, 함께 공원을 산책하며 시간을 보냈다.

귀국하면서 그 약을 구해 달라고 부탁했고, 한국에 돌아와서야 알게 되었다.

그 약은 항우울제가 아니라 영양제였다는 사실을. 약의 효능이 아니라, 관계와 움직임, 삶의 리듬이 그를

회복시켰던 것이다. 이런 경험을 가진 상담자라면, 내담자의 고통을 진단이 아니라 삶의 맥락 속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상담자는 결국, 자기 삶에서 배운 자연스러운 도움의 태도와 전문 세계에서 익힌 이론적 엄격함을 천천히 하나로 엮어 가는 사람이다. 이 과정을 건너뛰려는 순간, 상담은 기술이 되지만 사람은 사라진다. 구명조끼는 필요하다. 그러나 언젠가는 그것을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

그때에야 비로소 상담자는 기술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 앞에 서는 사람이 된다.

그리고 스코볼트는 마지막으로, 상담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질 수 있는 또 다른 위험을 시처럼 들려준다.

어느 훗날에

하나님,

직업적인 상담자로부터 저를 보호하소서.

그녀는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무언가를 얻을 수 있도록 도와주기에

저는 너무 바쁘답니다.

(중략)


“눈을 뜨세요.”

치료자는 말합니다.

“당신은 그날을

꿈속에서 떠나보내고 싶어 하지 않는군요.”

상담자는

내가 무엇을 하곤 했는지를

알고 싶어 합니다.


뜨개질? 크로셰?

네, 그런 것들을 했죠.

요리도 했고, 청소도 했어요.

다섯 아이를 키웠고 많은 일들이 있었죠.


아름다운 일들, 끔찍한 일들.

나는 그것들을

생각하고 싶어요.


마음의 선반에

차곡차곡 정리하고 싶습니다.

상담자는

빛나는 구슬들을 보여 주며

보석을 만들고 싶은지 묻습니다.

그녀는

귀여운 아이와 같고,

좋은 의도를 지녔어요.

그래서 그렇게 하겠다고

그녀에게 말합니다.


그 어느 훗날에.


상담은 사람의 삶을 편집하는 일이 아니라, 사람의 삶 앞에 조심스럽게 서는 일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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