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잃어버린 사랑

경계선(boundary)

by 마음 자서전


심리학에서 말하는 경계선(boundary)이란, 무엇이 나의 책임이고 무엇이 타인의 책임인지를 가르는 보이지 않는 선이다. 이 선이 분명할수록 관계는 안정되고, 이 선이 흐릿할수록 관계는 쉽게 상처 입는다.


텔레비전 속 부부와 가족들은 유난히 자주 싸운다. 〈이혼숙려캠프〉와 〈오은영의 결혼지옥〉에 등장하는 부부들은 서로를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말끝마다 상대를 무너뜨린다.

〈금쪽이〉에 나오는 아이들은 울고, 분노하고, 때로는 침묵한다.

이 장면을 관통하는 하나의 공통점은 대체로 ‘경계선’을 잃어버린 관계 속에 있다.


싸움의 이유는 다르지만, 구조는 같다. 부부 프로그램에서 자주 반복되는 장면이 있다. 배우자의 휴대전화를 검사하고, 일정과 인간관계를 통제하며, “부부인데 이 정도도 공유 못 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말의 이면에는 이런 전제가 숨어 있다.


‘너는 나와 분리된 사람이 아니라, 내가 관리하고 조정할 대상이다.’


이는 사랑의 언어가 아니라 ‘경계선 붕괴’의 언어다. 오은영 박사가 말한다.


“그 감정은 배우자의 감정이지, 당신이 책임질 감정이 아닙니다.


이 말은 위로가 아니라 경계선 선언이다. 부부는 하나의 팀일 수는 있어도, 하나의 인격은 아니다.

〈금쪽이〉에서 문제 행동을 보이는 아이들은 대개 불안정하다. 분노하거나, 지나치게 위축되거나, 부모의 눈치를 본다. 그러나 관찰이 이어질수록 드러나는 사실은 명확하다. 아이의 행동은 원인이 아니라 증상이라는 점이다.

아이의 감정을 부모가 대신 처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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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불안을 아이가 떠안으며

아이의 선택을 부모가 미리 결정해 버리는 순간


아이의 마음속 경계선은 무너진다. 아이에게 남는 것은 단 하나다.


“이 관계에서 나는 어디까지 나여도 되는 걸까?”


아이의 문제 행동은 이 질문에 대한 행동으로 된 항의다.

왜 가족에서 경계선은 가장 먼저 무너질까?

가족은 가장 안전해야 할 관계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쉽게 경계가 사라지는 관계다.


“가족인데”

“사랑하니까”

“다 너를 위해서야”


이런 말들은 따뜻해 보이지만, 차갑게 경계선을 지우는 데 쓰인다. 그래서 가족 안에서는 경계선을 말로 세우는 대신, 참다가 어느 날 마지노선으로 폭발하는 일이 생긴다.

갑작스러운 이혼 선언, 연락 두절, 아이의 극단적 반응은 대개 하루아침에 생긴 것이 아니다.

그 이전에 수없이 많은 작은 경계선들이 무시되었기 때문이다.

이 프로그램들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단순하다.


‘선을 지켜야 관계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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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선은 관계를 끊기 위한 벽이 아니라, 관계를 오래 유지하기 위한 울타리다.

부부에게 경계선은 존중을 유지한 채 가까이 있기 위한 조건이고,

부모에게 경계선은 아이를 독립된 인격으로 키우기 위한 토대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침범했는가.

걱정이라는 말로 통제하지는 않았는가.

가까움이라는 이유로 선을 지우지는 않았는가.


경계선이 회복될 때, 부부는 다시 대화할 수 있고 아이들은 비로소 자기 자리를 찾는다.

가족이 건강해진다는 것은 더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제자리에 서는 일이다.


<울타리 선언문>

울타리(boundary)는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경계선을 정할 수 있도록 돕니다. 울타리는 어떤 것이 나의 것이고 어떤 것이 남의 것인지를 경계 지어 줍니다.

울타리는 나를 지켜주는 내면의 힘입니다. 울타리를 만드는 이유는 이제 만난 내면아이를 잘 치유하고 성장시키는 것은 물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상처를 주거나 받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 신체적 울타리(physical boundary)는 어떤 환경에서 누가 우리와 신체적으로 접촉할지를 결정하도록 도와줍니다.

- 정신적인 울타리(mental boundary)는 우리 자신의 생각·신념·의견을 가질 수 있는 자유를 줍니다.

- 정서적 울타리(emotional boundary)는 우리 자신의 감정을 다루고, 타인의 해로운 감정으로부터 분리, 통제적인 감정들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줍니다(감정 · 책임 · 감정 전이).

- 영적 울타리(spiritual boundary)는 우리 자신의 뜻과 신의 뜻을 분별하도록 돕고 신에 대한 새로운 경외심을 줍니다.

(오제은, 《자기사랑노트》, 산티, 2009, p.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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