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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 자서전 Mar 08. 2017

늙은 애완견의 말배우기

<실버 에세이>

우리 집은 말을 많이 하지 않는 편이다. 집사람도 말이 별로 없고 나도 꼭 할 말만하는 편이다. 가끔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고 와서 집사람에게 전하기도 하지만 수다스럽지 못한 집사람이나 나나 별로 말이 없다. 

어쩌다 말을 하면 아이들 이야기를 한다. 아이들이 관심사이니 이야기가 잘 된다. 젊을 때는 다투기도 했는데, 나이가 들어가니 다툴 일이 없다. 티격태격할 때가 그립다. 늙으니 애물단지가 된 느낌이다. 

남자는 늙으면 애완견과 처지가 비슷해진다.

남자와 개의 공통점이 있다는 말이 있다.

1. 털이 많다.

2. 먹이를 일일이 챙겨줘야 한다.

3. 시간을 내서 놀아 주어야 한다.

4. 버릇을 잘못 들여놓으면 평생 고생한다. 

5. 복잡한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우스개로 만들었겠지만, 남자는 복잡한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구조적으로 여자에 비해 언어지능이 떨어진다. 

나도 말을 잘 못한다. 남들처럼 재미있게 말을 하고 싶지만 잘 안 된다. 말로하기보다는 글을 쓰는 게 편하다. 고등학교 때는 친구들이 연애편지를 써달라고 하면서 나에게 부탁을 한 적이 있다. 내가 말하는 것보다 글쓰기가 편하기 때문인지 친구들은 나에게 편지를 부탁하면 편지를 써주어서 연애가 성공한 적이 꽤 많았다. 

정작 편지를 많이 써준 나는 연애를 못했다. 여자를 만나면 이야기를 잘 못했기 때문이다. 단체로 미팅을 하면 이야기를 하는 데 단 둘이 만나면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를 몰라 침묵의 동굴로 들어갔다. 그러니 나는 말과 글이 다른 사람이다. 편지를 보낼 때는 화려해보였던 이미지가 만나면 초라해졌다. 

예전엔 펜팔이라는 게 있었다. 나는 펜팔을 해도 만나지는 안았다. 만나보고 싶은 욕구도 있었지만 그 이후가 감당이 안 되기에 만나기가 두려웠다. 

혼자라도 말을 연습해야지 하고 스피치교육도 받아보았지만 교육으로 나아진 건 없다. 정해진 원고로 연습하는 것과 즉흥적으로 만들어내는 말의 차이가 존재한다. 스피치학원에서 정치인, 목사님, 강사들과 같은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춰서 컬리큘럼을 작성했다. 정치적인 말의 마술사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이다.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스피치가 아니다. 


평상시에 혼자서 말없이 책을 보거나 글을 쓰는 게 좋다. 사람들이 많은 곳보다는 한적한 곳이 좋다. 

예전부터 남자는 입이 무거워야 한다는 말을 듣고 자랐기 때문인지 집안에서도 말을 잘하는 형제가 없다.   

말은 언어뿐만이 아니라 문자나, 몸짓으로도 말을 하고, 옷이나 장신구로도 말을 한다. 음악이나 미술로도 말을 한다. 비언어표현이 강한 사람들은 예술적인 지능이 높은 사람이다. 한국인은 특히 비언어적 표현이 능하다고 한다. 섭섭하다는 말을 언어적으로 표현하기보다 비언어적으로 말한다. 고급식당에서는 손님이 무엇을 더 달라고 하기 전에 미리 알아서 서비스를 하는 경우가 많다. 몇 번을 큰소리를 질러도 서비스가 느린 식당과의 차이점이다. 한국인은 이런 서비스를 원한다. 이걸 눈치라고 하는데, 내 눈치는 둔치다. 남자보다는 여자들이 눈치가 빠르다. 눈치는 느리고 빠르기로 사람의 능력을 알게 된다. 눈치가 없는 사람은 무덤에서야 알 수도 있을지 모른다. 

말도 자세히 분석하면 차이가 크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꽃이 피었다’는 물리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본 언어이고, ‘꽃은 피었다’는 객관적 사실에 주관적정서가 담긴 언어다.  말도 분석하고 자세히 들어다보면 학문이다. 보통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글을 쓰거나 언어를 아는 사람들은 미세한 차이를 느낀다. 나는 말로 관계를 만드는 일보다는 이런 것에 더 관심을 가진다.  이런 거 하나를 발견하면 노트북에 기록하고 저장한다. 그리곤 잊어버렸다가 시간이 있고 심심할 때면 다시 들여다보고 나름대로 편집하거나 수정을 하여 SNS에 글을 올린다. 


요즘은 젊은이들이 쓰는 신조어를 책에서 읽고 신조어를 노트북에 옮겨 적는 작업을 했다. 미디어에서 신조어를 발견하면 노트북에 저장한다. 안물안궁, 근자감, 개쌍마이웨이, 신낙수효과를 노트북에 옮기면서 쓴웃음이 나오고 수긍이 된다. 신조어는 기성세대에 대한 저항감이 녹아있다. 그래서 그들만이 공유하고 꼰대들은 알아듣지 못하게 한다. 신조어를 알면 기성세대들이 어떤 잘못인지를 알 수도 있을 것 같다. 손주와 같이 있으니 신조어를 알아두면 손주와 소통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배운다. 사실 말을 한다고 말이 통하는 건 아니다. 문화적 차이가 있을 때 언어는 단절된다.

에피스테메(Episteme)란 말이 있다. 문화지층(文化地層)이란 뜻으로도 쓰인다. 예전의 문화는 젊은이의 문화로 인해 서서히 변한다. 몸은 늙어가지만 이렇게라도 신문화에 뒤처지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쳐본다. 


애완견이 재주를 배워 주인님 마음에 들려고 노력하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 신조어를 모르신다면 인테넷으로 찾아보시라. 나도 그렇게 배웠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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