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연장통>
음악의 진화적 기능
음악이 다른 목적을 위해 진화한 적응들로부터 나온 부산물에 불과하다는 핑커의 주장은 엄청난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그는 순식간에 음악가와 음악학자들 사이에 공공의 적이 되었다. "언어나 시각, 사회적 추론 등에 견주어 보면, 음악이 갑자기 우리 종에서 사리진다 해도, 우리 일상 생활은 사실상 전혀 달리지지 않을 것이다."와 같은 발언들은 핑커에 대한 반감을 낳기 충분했다. 그러면 이번에는 핑커와 달리 음악이 특정한 목적을 수행하게끔 자연선택에 의해 잘 설계된 적응이라는 가설들을 살펴보자. 이들이 핑커에 의해 추락한 음악의 위상을 회복시켜 줄 수 있을까?
얼마 전 어느 의례적인 공식 행사에 청중으로 참석했다. 새로 몸담게 된 학교의 개교 기념식이었다고는 말하지 않겠다. 그런 행사들이 으례 그렇듯이, 식순에 따라 단상에서 착착 진행되는 일련의 과정들은 별다른 흥미를 일으키지 못했고 조금씩 하품까지 새어 나왔다. 어느덧 마지막 순서에 이르렀다.
오케스트라가 귀에 익숙한 가곡을 장엄하게 연주하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학교의 설립자께서 직접 작사하신 곡이란다. 아아! 그 곡은 부임한 지 겨우 두 달된 신출내기마저 학교에 대한 무한한 자부심과 긍지를 느끼게 해 줄 만큼 감동적이었다.
위의 예에서 보듯이, 데이비드 슬론 같은 과학자들은 음악이 한 집단 내 구성원들 간의 사회적 결속을 강화하는 기능을 한다고 제안했다. 고된 행군 동안 합창하는 군가는 전우애를 불러일으킨다. 짝짓기 예능 프로그램은 출연자들을 장기 자랑부터 시켜서 어색함을 씻는다. 한국 축구 구가 대표팀을 응원하며 부르는 '오 필승 코리아'는 전 국민을 끈끈하게 묶는다. 월슨은 음악 활동이 개인에게는 손해지만 집단 전체에 이득을 주기 때문에 자연이 선택되었다는 특유의 '집단선택론'을 내세운다.
그러나 진화의 역사를 통해 인간은 가까운 친족들로 이루어진 소규모 집단에서 주로 생활했음을 고려하면, 집단선택론은 자신의 친족을 도와줌으로써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전수한다는 혈연선택론으로 재해석할 수 있다. 음악이 과연 사회적 결속을 강화하게끔 잘 설계된 적응인지를 증명하려면, 이 가설로부터 유도되는 예측을 검증하는 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 예컨대 어떤 집단은 음악활동을 하게끔 하게 한 다음에 과연 음악이 사회적 유대를 특히 더 높여 주는 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음악의 진화적 기능에 대한 두 번째 가설을 보기로 하자. 음악은 사슴의 큰 뿔이나 공작의 화려한 꼬리처럼, 남성이 자신의 우수한 유전적 형질을 과시하여 여성을 유혹하기 위한 구애 활동이라는 가설이다. 다윈은 새의 노랫소리가 짝을 유혹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에 주목했다. 그는 인간의 노래도 이성에게 사랑이나 질투 같은 격정적인 정서 변화를 불러일으킴으로써 동일한 기능을 수행한다고 제안했다. 이 가설은 진화심리학자 제프리 밀러에 의해 최근 다시 큰 인기를 끌었다. 밀러에 따르면, 바캉스 씨즌이 도래하면 난데없이 묵혀든 통기타를 꺼내 멋들어진 곡 연습에 몰두하는 모든 젊은 남성들은 이미 이 가설이 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고루한 심리학자들만이 이 평범한 진리를 모를 뿐이다. 이 주장에 화답하듯이, 많은 뮤직비디오들이 천편일률적으로 젊고 매력적인 여성들에게 둘러싸인 남자가수가 자신의 능력(수영장이 딸린 저택과 오픈카 등등)을 통해 은연중 과시하면서 노래하는 모습들로 채워진다.
세 번째 가설은 엄마가 울어 대는 갓난아이를 달래는 자장가로부터 음악이 기원했다고 주장한다. 언뜻 터무니없이 들릴지 모르겠다. 하지만 음악이 흐트러진 마음을 위로하고 엄아와의 유대를 강화시키는 기능을 한다는 이 가설은 엄마와 자식 간의 끈끈한 관계가 모든 문화권에서 공통점이라는 점, 음악과 언어가 뇌신경 영역에서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 음악에 대한 관심이 아주 어릴 때부터 나타난다는 점 등에 의해 뒷받침된다. 흥미롭게도 인간을 제외한 그 어느 영장류 부모도 아기를 재울 때 자장가와 유사한 흥얼거림을 내지 않는다.
음악이 왜 존재하는가에 대한 가설은 무수히 제기되어 왔지만 아직까지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몇몇 연구자들은 아예 음악의 진화적 기능을 묻기를 중단하고 다른 영장류와의 비교 연구나 유아의 심리에 대한 발달 연구를 통해 새로운 탈출구를 모색하고자 주장하기까지 한다. 음악이 진화적 적응임을 입증하고 싶어 하는 연구자들에게, 음악이 부산물에 불과하다고 보는 핑커의 주장은 귀찮고 성가시지만 결국에는 알찬 결실을 갖게 해주는 채찍질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