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적 개인과 열린 공동체

《이상한 정상가족》

by 마음 자서전


미국은 개인주의 문화가 강하다고 보면, 한국은 공동체 문화가 강하다. 역사적으로 볼 때도 마을 공동체에서 모든 문제를 해결했었다. 그러나 현대는 마을 공동체가 사라지고 있다. 그래도 사람들은 공동체적인 문화를 그리워하며 살아간다.

IMF때 금모으기 운동에 온 국민이 나선 것도 공동체문화가 살아있기 때문이었다.


사회학자 김덕영은 《환영근대》에서 금 모으기 운동을 “국가와 가족의 관계에서 쌍방성이 결여된 일방적 증여”라고 묘사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관계에서 가족은 장롱 깊숙이 간직한 할머니의 금가락지를 내놓을 정도로 헌신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국가는 외환위기와 더불어 실직한 사람을 전적으로 가족에게 떠맡겼다. 이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노숙자로 전락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172쪽)


금모으기를 했지만 돌아온 것은 실직과 노숙이다. 공동체의 허점을 말하고 있다. 지금도 공동체의 구멍은 뚫려있지만 공동체를 구성하려는 한국인의 마음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공동체의 문제점은 사교육에서 나타난다.

공동체 이전에 우리는 각자의 인권을 찾아야 한다. 공동체를 위하여 개인의 인권이 무시되는 공동체는 평화의 공동체가 아니라, 독재 공동체가 된다.


보편적인 인권은 어디에서 시작될까요? 작은 곳, 그리고 아주 가까운 곳에서부터입니다. 아주 가깝고, 아주 작아서, 그곳은 어떤 세계지도에서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곳은 각각의 사람들의 세계입니다. (중략) 작은 곳에서부터의 인권을 지키려는 모두의 노력이 없다면 보다 큰 세계에서의 발전도 헛될 것입니다.

1958년 세계인권선언 채택 10주년 기념에 엘레노어 루즈벨트Eleanor Roosevelt (13쪽)


한국은 부모의 친권을 주장하는 나라인 반면에 유럽은 부모의 의무를 주장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부모의 의무가 명시되어야 한다.

친권이 권리가 아니라 의무라는 시작이 가장 또렷하게 반영된 제도는 2007년 유럽가족위원회가 만든 ‘유럽연합 친권법 원칙’이다. 제목에서부터 부모의 권리대신 부모의 의무라는 용어를 썼다. 권리보다 의무에 방점을 찍고 친권을 바라보는 것이다. (108쪽)


진정한 공동체가 되려면 돌봄이 공적 가치를 지녀야 한다.


정치학자 조안 트론토Joan C. Tronto가 《돌봄 민주주의》에서 ‘돌봄은 공적 가치를 지닌 공공재다. 특정한 성, 계급에게 일임해서 해치울 일이 아니라 민주적 정부와 시민 모두가 책임져야 하는 과제다. (239쪽)


《이상한 정상가족》 (자율적 개인과 열린 공동체를 그리며) (김희경, 동아시아, 2017, 20180223)

‘공동체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게 만든 책이다. 우리 사회에서 약자들이 살아가기 힘든 건 공공영역의 역할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마음공동체, 교회공동체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국가도 공공 돌봄을 하지 못하고 있다. 서민들만 힘들게 살아가는 이 시대에 읽어 볼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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