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에 못 박힌 십일조》
《십자가에 못 박힌 십일조》 (안용수, 책평화, 2016, 20180612)
저자 안용수는, 군사정권에 의해 영국 애버딘대학교 신학부에서 성서석의학(고대문헌해석학) 전공으로 졸업한 다음, 케임브리지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에 입학하여 에른스트 밤멜(E. Bammel) 교수의 지도하에 ‘의미론적 문헌해석방법론’에 관해 논문을 준비했다.
하지만 한국정보기관의 지속적인 관리·사찰과 유학생간첩조작에 의한 충격, 고문후유증 등으로 비롯된 건강 악화로 귀국하여 입원 및 통원 치료를 장기간 받아야 했다.(장애3급),
현재 작은공동체 ‘평화나무교회’ 석의설교봉사 목사로 섬기고 있다.
한국 교회에 성서석의학(Biblical Exegesis)/석의신학(Exegeology)을 보급시키려고 애쓰고 있다. 즉각 폐지되어야 하는 강제종교세와 같은 십일조(헌금)에 관해, 2천년 동안, 한국은 물론 세계 어느 학자도 연구하지 못한 새로운 연구서이기에, 십일조헌금의 폐단·사기성 등을 종식시키기에, 인류문화에 길이 공헌할 연구서다.
십일조를 ‘보물단지‘처럼 여긴 것은 가톨릭교회가 시작된 때부터 였다. 돈이 필요한 교회 지도자들이 야훼벗들에게 세금처럼 강제로 요구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런 지도자들을 ’교회왕‘이라고 불렀다.
교회왕들은 농산물과 현금 두 가지 다 그 대상으로 하여 요구했다. 특히 현금의 경우, 계산할 때 10%에 대해 한 푼도 어기지 않는 게 야훼의 뜻이라고 강조했다. 강제로 징수하고자 법률까지 제정한 적도 있었다. ---
누가 십일조 종교 노예를 많이 양성할 것인가 경쟁가지 했다. 양성비법까지 마련하여 전수했다. 그 대신, 바치는 자는 자동으로 면죄부를 받아서 천국에 들어가고 ‘장수 부자’의 복을 누린다고 축복기도까지 해줬다. 어떤 가톨릭국가에서는 십일조를 내지 않을 경우에 사형을 집행하는 일까지 있었다. 18-9
성경에는
전리품 십일조 : 아브람은 조카 롯을 구하는 전쟁이 끝난 후였다. 전쟁 후유증에 지쳐 있었다. 상대는 당시 최강국이었고, 언제든지 또다시 공격해올 수 있었다. --- 아브람은 종들에게 전리품을 모으라고 했다. 너무 많아 모을 수가 없자 일부라도 달라고 한 후 말키체데크에게 바쳤다. 가신 300여명을 이끌고 최강 연합군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야훼의 도우심이 있얶기 때문에, 야훼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모쉐는 이 사건에 대해 아브람이 말키체데트에게 ‘전리품으로 십일조’를 냈다고 기록했다. 이는 당시 전쟁 문화와 실일조 문화 그대로였다. 당시에는 전쟁 승리자가 모든 전리품을 취득할 수 있었고, 그 전리품 중 십일조를 신들이나 왕들에게 바쳤다.
이행약속 십일조 : 창세기 28장22절에 기록된 야아콥의 십일조였다. -- 십일조에 대한 근거가 아님을 입중하는 분명한 증거가 있다. 그것은 야아콥이 야훼에게 십일조를 바치겠다는 ‘이행 약속’이었다는 점, 야아콥이 나중에 약속대로 바쳤는지는 기록이 없다. 그러기에 이 구절을 근거로 십일조 헌금을 요구할 수 없다.
특성
자발성
아브람이 말키체데크 왕에게 십일조를 바친 것은 야훼의 명령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또한 말키체데크 왕이 요구한 것도 아니었다. 아브람은 전적인 자발성으로 십일조를 바쳤다.
횟수
아브람은 평생 동안 십일조를 딱 한 번 냈다.--
지속적이고 정기적으로, 매주, 매월, 매년, 평생 십일조를 했다는 증거가 없다.
가톨릭교회에서 시작한 십일조를, 가톨릭교회는 십일조를 내지 않는다. 반면에 개신교는 십일조를 낸다. 그 중에서 극히 일부이기는 하지만 십일조를 내지 않는 개신교회도 있다.
70~80년 전에는 연보를 냈다. 십일조는 내지 않았다고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