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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과 여행

인생은 긴 여정

by 마음 자서전

관광과 여행


내가 어렸을 때 살던 곳은 동대문구 신설동이다. 그 시절의 소풍은 학교에서 가까운 홍릉이나 정릉을 가는 것이었다. 원족이라고 물렀다. 학교에서 가는 소풍이 동네에 큰 행사였다.


5살 때, 625전쟁으로 피난을 떠났다. 외할아버지의 큰 트럭 한 대에 친척들이 함께 타고 피난길에 오른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걸어서 피난을 간 것에 비하면 비좁은 트럭위에서 추위와 떨기도 했겠다. 그런데 추웠던 기억은 없고, 배고팠던 기억만 있다. 쌀이 귀하고 도정시절도 열악해, 밥에 돌도 많고 볍씨가 벗겨지지 않은 쭉정이도 많았다. 그래도 돌을 골라내고, 볍씨를 까서 먹었다. 피난에서 가장 큰 위기는 눈이 많이 온 길을 달리다가 차가 논길에 넘어졌었다. 사람들이 다지고 죽기도 했는데, 나는 운 좋게도 논도랑에 사이에 떨어져 내 위를 트럭이 덮쳤지만 살았었던 기적 같은 일이 있었다. 구사일생이었다. 피난은 여행이 아닌 고행(苦行)이었다.


고등학교 때는 무전여행이라고 해서 서울에서 부산까지 친구랑 완행열차를 타고 갔던 기억이 있다. 열차에서 서서 잠을 잤다. 피곤해서 잠을 자야겠는데 입석이라 잠 잘 장소가 없어, 서서 잠을 잤다. 잠이 들 만하면 다리의 힘이 풀려 주저앉곤 했다. 밥도 제대로 못 먹으면서도 친구랑 둘이서 웃으며 놀러 다닌 기억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결혼 후엔 아이들과 여행을 다녔지만 내 몸이 자유로운 여행은 아니었다. 아이들을 집중해서 돌봐야 되므로, 자유로운 여행은 아니었다.


은퇴 후엔 한 동안 우울증이 있었지만 책을 보고, 글을 쓰고, 여행을 다니면서 우울증을 극복했다. “독서는 머리로 하는 여행이고, 여행은 몸으로 하는 독서다.”란 말이 있다. 머리가 아플 땐 몸으로 하는 독서, 몸이 피곤할 땐 머리로 하는 여행이다.


전에는 관광객들과 어울려서 떠나기도 했지만 앞으론, 그런 일이 없을 것이다. 보는 관광보다는 나만의 무언가를 찾아가는 여행이 내 적성에 맞다. 휴식 속에 충전을 하려는 사람에게는 관광이 좋을 것이지만, 나는 힘듦 속에 충전을 하고 싶다. 앞으로 꿈은 자원봉사 여행을 하고 싶다.


관광은 목적지에 도달해야 시작되지만, 여행은 떠나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것도 매력이다. 관광은 몸에 베인 습관을 데리고 다니지만, 여행은 내가 가지고 있는 습관을 덜어내야 한다. 지금까지 살아 온 습관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된다.


관광은 가이드를 필요로 하고 떠날 때 돈이 있어야 하지만, 여행은 그런 것이 필요 없다는 것이 매력이다. 아직 돈을 벌면서 여행을 해 보질 못했지만, 여행전문가들은 그렇게 한다니 여행에서 나는 젖먹이 수준이다. 여행은 떠나는 것이 먼저이고 눈으로 보는 것은 나중이다. 정처 없이 가끔 길을 나설 때도 있었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고, 일상에서 탈출하고 싶을 땐, 이것저것 생각할 것 없이 여행을 떠나고 싶다.



진정한 여행 / 나짐 히크메트 (1902~63) 터기 시인



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씌어지지 않았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러지지 않았다.


최고의 날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


가장 넓은 바다는 아직 항해되지 않았고


가장 먼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불멸의 춤은 아직 추어지지 않았으며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밤


무엇을 해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 비로소 진정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가 비로소 진정한 여행의 시작이다.


가장 먼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시인은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가 비로소 진정한 여행의 시각의 시작이다.’라고 말한다.


인생은 가장 멀고, 긴 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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