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시간》
《우리들의 시간》 (박경리, 마로니에북스, 2012, 181127)
시를 쓴다는 것은 큰 위안이었다. 자정적(自淨的)과정이기도 했다.
시심(詩心)은 내 생의 버팀목이 되어주기를 원하는 것이며 오늘 황폐해진 이 땅에도 진실하게 살 수 있는 시심의 싹이 돋아나 주기를 간곡히 기원한다. - 자서(自序) 중에서 11
박경리의 어린 시절은 순탄치 않았다. 아버지는 새장가를 가서 엄마와 외롭게 살았다. 아버지를 원망하고 고등학교(진주여고)를 졸업한다. 틈틈이 시를 썼다. 김동리의 부인이 진주여고를 졸업한 선배였다. 자신이 쓴 시를 김동리에게 보여주었더니 소설을 써보라고 권유를 받았다. 단편을 쓰기 시작하여 김동리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에 등단하게 된다. 이후 쉬지 않고 소설에 매달려 토지와 같은 명작을 남겼다.
이 책은 박경리가 남긴 시집으로 그가 소설을 쓰는 틈틈이 쓴 시가 수록되어 있다.
뻐꾸기
어릴 적에 뻐꾸기는
동서남북 원근도
모를 소리였다.
가도 가도 따라오던 뻐꾸기울음
가도 가도 도망치던 뻐꾸기울음
어느 나무 어느 둥지인지
저승에서 우는가 이승에서 우는가
알 수 없었다
분명
산속에 있기는 있을 터인데
나는 아직 그 새를 본 적이 없다
내 인생에서도 보이지 않았던
그 많은 것들과 같이
뻐꾸기를 본 적이 없다 23
# 작품해설 : 뻐꾸기를 본 적이 없지만 소리를 듣고 안다. 이 세상에서 본 적이 없지만 존재하는 게 있다. 있지만 볼 수 있는 게 있다. 누군가 나를 짝사랑할 수도 있고, 누군가 나를 혐오할 수도 있다.
시인 1
시인은
어느 누구에게도 영혼 팔지 말고
권리 못지않게 의무 행하며
생명의 존엄
도도하게 노래하라 해야 한다.
우리의 죄가 아니니라
욕망 때문에
땅을 기는 자는
늘 독침을 뿌리고
고개 쳐들 때 오면
비검(匕劍) 농하여
사람들 목을 자른다
백만 번을 말해보아야
그 정열 막을 수 없고
지켜보아야 하는
많은 사람의
억울한 눈물
오늘도 어느 곳에선가
목메이는 사람
스스로 세상 버리는 사람
아마
참 많이 있을 것 같다
울지 말자 울지 말자
우리의 죄가 아니니라
세상을 만드신 당신께
당신께서는 언제나
바늘구멍만큼 열어주셨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어떻게 살았겠습니까
이제는 안 되겠다
싶었을 때도
당신이 열어주실
틈새를 믿었습니다
달콤하게
어리광부리는 마음으로
어쩌면 나는
늘 행복했는지
행복했을 것입니다
목마르지 않게
천수(天水)를 주시던 당신
삶은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
살다가 힘들고 어려운 일을 겪게 된다. 이럴 때는 잠시 시집을 꺼내드는 것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