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를 바꾸는 교양》
《21세기를 바꾸는 교양》 (홍세화 외 7인 한겨레신문사, 2004, 181229)
한겨레신문사에서 일반 독자들을 대상으로 교양강좌를 했다. 사회자는 연예인을 모셨다. 이런 컨셉을 보노라면 TVN에서 방영하는 <어쩌다 어른>과 유사하다. 한겨레신문이 10여년 전에 했던 프로그램과 유사하다. 방송기획자의 말을 빌리면 ‘모든 프로그램에서 발명은 없고 어떻게 모방하고 변형시키는가가 중요하다‘고 했다.
당시에 한겨레신문사는 교양, 자존심, 거짓말, 배신, 새 천년, 상상력 등의 주제를 가지고 강연을 했다. 10년에서 20년 가까이 된 책이라 당시의 시각과 현대의 시각을 비교해 볼 수 있다.
파리의 택시운전사 홍세화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공화국은 영어로는 리퍼블릭republic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공public’개념입니다. 공교육, 의료의 공공성, 토지의 공개념에서의 ‘공’은 무도 퍼블릭 개념과 연결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민주공화국이라고 규정했으면서도 또 영어로는 아예 ‘민주’를 생락하고 ‘리퍼블릭 오브 코리아Republic of Korea라고 리퍼블릭을 주장하면서도 가장 중요한 핵심 요체인 퍼블릭 개념이 거의 없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사회 구성원들에게서조차 민주공화국 이념은 철저히 배반당해왔다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면 왜 그런 일이 일어날까요? 이것은 수구 세력의 헤게모니와 관련지어서 말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이 민주공화국임에도 그와 같은 정체성에 대하여 공유하고 있는 긍정적 가치도 없고, 그 출발점인 공개념도 제대로 서 있지 않습니다. 예컨대 공교육을 제대로 하자. 또는 토지 공개념을 제대로 세우자고 했을 때 바로 “빨갱이다.”, “좌파적 발상이다.”, “사회주의적 발상이다.”말하는 것 자체가 그만큼 공화국으로서의 공개념이 정립되지 못했다는 것을 반영하는 겁니다.'84-5
한국은 개념이 없다고 한다. 사개념은 있어도 공개념은 없다. 우리나라가 살기 힘들다고 말하는 것도 공개념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나만 잘 되고, 우리 집만 잘 살면 된다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사회 공동체의 발전은 더디게 된다. 그래도 이 나라가 이 만큼 성장했으니까 잘 했다는 주장도 있다. 이 주장은 재벌이나 정치인의 희생이 아닌, 노동자들의 희생으로 얻어진 성장이다. 그 결과 재벌공화국이 되어 정치인이나 국민들이 재벌의 눈치를 보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여러 민주투쟁이 있었지만 큰 성과 없이 끝난다.
시인 김수영은 <좌절의 역사>라는 시를 통해 우리의 현실을 말한다.
《그 방을 생각하며》시인 김수영
혁명은 안 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 버렸다
그 방의 벽에는 싸우라 싸우라는 말이
헛소리처럼 아직도 어둠을 지키고 있을 것이다.
나는 모든 노래를 그 방에 함께 남기고 왔을 게다
그렇듯 이제 나의 가슴은 이유 없이 메말랐다
그 방의 벽은 나의 가슴이고 나의 사지일까
일하라 일하라 일하라는 말이
헛소리처럼 아직도 나의 가슴을 울리고 있지만
나는 그 노래도 그 전의 노래도 함께 다 잊어버리고 말았다.
혁명은 안 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 버렸다
나는 인제 녹슬 은 펜과 뼈와 광기-
실망의 가벼움을 재산으로 삼을 줄 안다
이 가벼움 혹시나 역시일지도 모르는
이 가벼움을 나는 나의 재산으로 삼았다.
혁명은 안 되고 방만 바꾸었지만
나의 입속에는 달콤한 의지의 잔재 대신에
다시 쓰디쓴 냄새만 되살아났지만
방을 잃고 낙서를 잃고 기대를 잃고
노래를 잃고 가벼움마저 잃어도
이제 나는 무엇인지 모르게 기쁘고
나의 가슴은 이유 없이 풍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