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해서 집에 돌아오는 데 긴 시간이 걸리지는 않는다. 어찌 됐든 하루는 끝이 났고, 나는 거의 허물어지듯 운전석에 앉는다. 그리고 회사 건물을 채 빠져 나오기도 전에 전화를 건다. 그때의 나를 누군가 본다면 거의 조급하게 보일 만큼 민첩하고 재빠르다. 전화는 절반 정도는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라는 음성 메시지와 함께 끊긴다. 그리고 절반 정도는 전화가 연결되지만 그 가운데 다시 절반은 “지금 좀 바빠서... 이따 내가 다시 전화할게.”라는 말과 함께 종료가 되고 만다. 그러면 나는 조금은 울적한 기분이 되어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는 음악에 마음을 기울이며 운전한다.
퇴근하자마자 남편의 목소리를 듣고자 하는 것은 감정의 심폐소생 같은 게 아닐까. 낯선 이들에 파묻혀 짐짓 씩씩하게 하루를 보내다 보면 숨을 참고 있다는 것마저 잊는다. 나는 그것을 남편의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깨닫는다.
남편은 결코 다정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꾹 참았다 터진 숨처럼 와다다다다 쏟아내는 내 말들을 긍정도 부정도 없이 조용히 듣다가 “알겠어.”하고 통화의 종료를 알릴 때가 많다. 그러면 나는 조금은 허무하고 삐친 기분이 들 때도 있지만, 그마저도 익숙한 감각으로 돌아오는 것이므로 나쁘지 않은 거라 생각한다. (남편을 생각할 때면 야속함이 제격이다.)
하지만 남편과의 연락이 가장 좋은 것은 따로 있다. 카카오톡 메시지를 받는 일이다. 나는 카카오톡 알림 메시지가 화면에 떠오를 때 남편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남편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나는 남편의 메시지를 선물을 풀 듯 설레는 마음으로 열어 본다. 냉수도 온수도 아닌 정수처럼 미지근하고 무미한 메시지일 뿐이지만 나에게는 가장 필요한 온도다. 차가울 땐 따뜻하게, 뜨거울 땐 시원하게.
생각해 보면 언제나 들쑥날쑥하고 오락가락하기 일쑤인 나에게 가장 필요한 제어장치가 남편이 아닐까. 만약 나와 똑같은 사람을 만났다면 나는 이런 식의 위로를 경험하지 못했을 것이다. 남편이 아니었다면 나의 삶은 지금보다 고단했으리라.
나는 이러한데 남편은 어떤지. 물어봤자 그럴싸하게 대답해 줄 리 없는 사람이란 것을 알기에 질문은 마음에 묻어두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