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작과 기대 사이
토요일 아침은 루틴이 있다. 일단 금요일 밤에 다짐으로 잠드는 것부터 시작한다. 내일 아침에는 남편을 따라 나서야지. 꼭 카페에 가서 책을 읽어야지. 토요일 아침에 남편은 테니스를 치러 간다. 남편의 차에 실려 테니스장 근처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늘 반복되는 나의 금요일 밤 다짐이다.
남편이 집을 나서는 시간은 굉장히 이른 시각이므로 카페에 가면 늘 한적하다. 한적한 카페 공간을 보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뿌듯해진다. 가장 마음에 드는 장소를 골라 앉을 수 있다. 그날의 기분에 따라 자리를 골라 앉고 오트우유로 만든 라떼를 마시며 책을 읽는다. 얼마나 단정한 아침의 일상인가.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의 토요일 워너비 루틴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나의 토요일 아침은 대부분 금요일 밤이 남긴 숙취 때문에 침대에서 일어나기 힘들다. 7시 즈음 침대를 빠져나가 짧은 시간 동안 나갈 준비를 하는 남편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며 아아, 나가고 싶다, 따라 나가고 싶다, 마음으로만 되뇐 채 누워 있다. 어느새 남편이 현관문을 닫고 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남편은 나에게 와 “카페 갈 거야?”라는 물음도 없이 혼자 떠나버리고 말았다. 이해한다. 남편은 이미 나에게 수없이 그 질문을 했고, 나는 거절로 답했다. 이것으로 나의 워너비 루틴은 저만치 멀어진다. 그리고, 나의 토요일 진짜 루틴이 시작된다.
다시 잠이라도 들면 좋으련만 그런 일은 거의 없다. 그때부터 남편이 테니스를 치고 돌아오는 두 시간 여 동안 침대에 누워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며 숙취를 궁굴리는 것이다. 이상한 일은 남편이다. 어제 나랑 함께 술을 마신 사람은 누구냔 말이다. 누가 등떠민 것도 아닌데 이른 새벽부터 스스로 일어나 미라클 모닝을 실천하는 저 사람이다. 생각해 보면 남편은 월화수목금은 출근하느라 늦잠을 모르고, 토일은 운동하느라 늦잠을 모른다. 주 7일을 정해진 시각에 일어나는 사람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참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참 대단하고 끔찍하다.
남편과 결혼하고 많은 것들이 신기했는데 그중 몇 가지가 이런 것들이었다. 밥을 먹고 나면 바로 일어나(벌떡!) 설거지를 한다. 세탁기가 다 돌았다는 소리가 나면 바로 일어나(벌떡!) 세탁물을 건조기로 옮긴다. 그럴 때 그의 몸짓에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다. 정말 벌떡! 그런 일들을 미루지 않고 해낸다는 것이 내가 봤을 때는 거의 경이로울 지경이었다.
이런 사람과 살다 보니 내 삶의 많은 부분이 좋아졌다. 나는 머리로만 오만 가지를 상상하는 류의 인간이다. 이런 사람을 게으른 사람이라고 한다. 남편은 생각은 짧고 행동이 많은 류의 인간이다. 이런 사람을 부지런한 사람이라고 한다. 부지런한 사람은 게으른 사람을 보며 답답함밖에 가질 것이 없겠으나 게으른 사람은 부지런한 사람 덕분에 삶이 더 윤택해진다.
“트리가 예쁜 카페에 가고 싶어.”라고 말하면 어느새 몇 개의 후보군 카페가 링크로 날아온다. 나는 트리가 예쁜 카페에 가고 싶지만, 갈 수 있을 만큼 게으름을 극복하지 못한 상태이다. 하지만 남편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을 만큼 매정할 용기는 없다. 나는 그럼 꾸역꾸역 마음 상태를 준비하고(‘아, 드라이브 신난다. 예쁜 카페 신난다.’) 남편을 따라 터덜터덜 길을 나선다. 하지만 차 안에는 완전히 내 취향에 맞춘 음악들이 흘러나오고, 차 안에서 보는 바깥 풍경은 언제나 특별한 운치가 있다. 운전하는 남편을 쳐다 보면 언제나 그렇듯 무색무취하다. 나는 금세 기분이 좋아지고, 외출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돌아오는 금요일 밤에는 남편에게 미리 말해둬야지. 내일 아침에는 꼭 나를 깨우라고. 늘 거절당했던 “카페 갈 거야?”라는 질문을 기대를 가지고 나에게 다시 한번 해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