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기억하는 법에 대하여
나의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루틴이다. 이것은 일단 다섯 가지 활동 시각이 고정값을 갖는 것에서 시작한다.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 밤에 잠드는 시간, 그리고 삼시 세 끼를 먹는 시간. 운동을 즐겨하여 체력을 단련하는 것도 아니요, 태어나길 강인한 체력을 가지고 태어난 것도 아닌 내가 그래도 이만큼이나마 사람 구실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도 이 루틴의 힘이다. 그래서 나는 이 루틴을 지킬 수 없는 상황을 극도로 경계한다. 지금보다 좀 더 어렸을 때는 단순히 불편해하는 정도였다면, 한 해 한 해 나이가 들수록 루틴이 깨지는 것에 대해 공포를 느낄 지경이 이르렀다.
이런 내가 여행을 좋아할 리 없다. 나에게 여행이란 감내하기 힘든 조건과 맞바꾸는 낯선 활동일 뿐이다. 엊그제 비행기에 실려 한 순간도 가만히 못 있게 만드는 극심한 목 통증을 겪으며, 이 시간이 내가 편안히 내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할 시간이라는 것을 깨달으며 내가 미쳤구나, 미치지 않고서야 이 고통을 또 느끼고 있단 말이냐, 스스로를 비난하고 타박했다. 그렇게 나는 지금 베트남 푸꾸옥에 도착했다.
하지만 지금부터 중요한 것은 이 시간들에 적절하게 그림자를 드리우는 일이다. 그럼으로써 여행은 제법 아름다운 추억이 될 수 있다. 이 활동이 잘 이루어진다면 나는 여행 시작 전에 설렘과 기대를 느끼는 사람은 못 되지만 여행 후에 여행의 시간들을 정성껏 매만져 평생의 추억으로 간직할 수 있는 사람은 될 수 있다.
지금 묵고 있는 푸꾸옥 숙소에는 꽃이 참 많은데 이 꽃들은 한국의 철쭉과 비슷한 종류가 아닌가 싶다. 빨강과 하양의 사이에서 펼쳐지는 스펙트럼 가운데 가장 곱고 연약한 색들을 골라 부드러운 화장지 위에 색을 입혀 놓은 것 같은 꽃나무들이 여기저기에 자리하고 있다. 내가 너무나 좋아하지만 키우기가 까다로워 몇 번이나 실패한 봄꽃 애니시다를 닮은 꽃나무들도 곳곳에 있다. 너무 높아 향기를 맡아볼 수는 없지만 노란 꽃봉오리가 몽글몽글 뭉쳐 있는 모습만으로도 향기롭다. 열대우림 지방에서만 볼 수 있는 잎이 뾰족한 야자수 계열의 나무들도 싱그럽다.
푸꾸옥은 비가 내리고 있다. 나는 발코니에 앉아 빗소리를 들으며 글을 쓴다. 아주 커다란 잉어들이 수십 마리 헤엄치는 바닥이 보이지 않는 깊은 연못에 비가 떨어지는 모습을 본다. 이 모든 것이 여행지에서의 감상을 더욱 독특하게 만들어 준다.
여행을 오면 또 하나 강아지와 고양이, 그리고 새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이 나에게는 큰 즐거움이다.
수영장 물을 마시는 작은 새의 그림자가 수영장 물빛에 비치는 게 예뻐서 그가 떠날 때까지 한참을 지켜보았다. 마트에 다녀오는 길에서는 반미 집에 세워둔 빗자루의 가닥을 끊어 날아올라 집을 짓는 참새를 만났다. 인도에 세워진 도로 표지판 사이에 집을 짓고 있었는데 거의 완성된 것처럼 보였다. 반미 집주인은 빗자루 살이 없어진 걸 알고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그것이 참새의 집 재료로 쓰였다는 것을.
그리고 참 많은 강아지들. 베트남의 강아지들은 대개 다리가 짧고 몸통이 길쭉하다. 우리나라 시골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시골 강아지를 위아래로 축소해 놓은 듯한 몸매다. 색깔은 다양한데 검정에 갈색이 섞여 있는 경우가 가장 흔한 것 같다. 이 강아지들은 집이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르겠다. 그저 집이 있는 사람들이 낮에 바깥 활동을 하듯 무심한 얼굴로 인도를 걷는다. 이들은 사람을 만났다고 꼬리를 흔드는 일도 없고, 지나가는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기 위해 안달 난 모습도 없다. 한국 강아지들이 “아유 예뻐”라는 말을 기다리느라 길에서 만난 사람을 빠안히 쳐다보는 아이들에 익숙해진 나는 그 무심한 얼굴이 낯설어 쳐다보고 또 쳐다본다. 애써 그들이 좋아할 만한 목소리로 말을 걸지만 대답해 주는 이들이 거의 없다.
고양이는 강아지보다 더 귀하다. 지난 이틀간 세 번 고양이를 만났을 뿐이다. 한 마리는 한국의 길고양이들처럼 사람을 피해 쏜살같이 어디론가 달려가고 있었다. 너무 반가워 쫓아갔지만 괜히 나 때문에 더 허둥지둥 달아나버렸다. 두 마리는 아주 작은 새끼 고양이로 바로 눈앞에서 장난치는 모습을 한참 쳐다봤는데 아직 어려서인지 장난에 골몰해서인지 전혀 도망가지 않았다. 검정, 노랑 색깔은 달랐지만 몸의 형태와 옆으로 길게 찢어진 눈매가 이들이 한배에서 한시에 태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밤이 되면 들어본 적 없는 낯선 소리들이 귓가를 두드린다. 어젯밤에 잠을 자면서 전자음 비슷한 소리가 너무 크고 가까이에서 들려 숙소 안에 어떤 전자기기가 잘못된 게 아닐까 문득 무섬증이 일었다. 잠자는 남편을 깨워, “여보 이 소리가 무슨 소리지?” 물었다. 잠이 잔뜩 묻어나는 목소리로 남편이 묻는다. “무슨 소리?” “이 소리 있잖아. 뚜르르르르 하는.” 마침 소리의 정체를 밝혀 주라는 듯 뚜르르르 다시 한 번 소리가 난다. “밖에 풀벌레 소리야.” 남편이 말하고 나서야 그 소리가 전자음이 아닌 벌레 소리로 들린다. “근데 밖인지 안인지 여보가 어떻게 알아?” “안에 있지는 않으니까 밖에서 나는 소리지.” 이 명료한 메시지에 나는 그제야 마음이 놓인다. 옆 침대에서는 두 주먹을 아기처럼 편 호아가 작게 코를 골며 자고 있다.
갑자기 남편이 보고 싶어진다. 남편은 게으름 피우는 나와 호아를 남겨 두고 혼자 수영을 하러 갔다. 비가 토독토독 내리는 길을 따라 수영장으로 올라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았다. 이제, 나는 노트북을 덮고 우산을 쓰고 비에 젖어 더 강렬히 뿜어내는 식물의 향기를 맡으며 남편을 만나러 가야겠다. 어쩌면 수영장에서 그는 타인도 없이 혼자 물살을 가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 모든 낯선 감각들을 나는 언제까지고 기억해야겠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