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엄마를 기억하나요

엄마 마음, 딸 마음

by 온시

요새 생성형 AI를 이용하여 오래된 사진을 영상으로 복원하는 일이 유행하고 있다. 우리 집 식구들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이런 일에 가장 발 빠른 남동생이 몇 장 남지 않은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 사진을 재료로 영상들을 만들어 단체 톡방에 차례로 올렸다. 영상은 사진 그대로 낡고 흐릿한 상태로 시작되지만 어느새 전혀 알 수 없는 선명하고 세련된 얼굴의 사람들로 바뀌어 움직였다. 영상 속 사람들은 어쩐 일인지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와는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나와 여동생은 결국 영상 러시에 의미와 가치가 있는 영상만 올리라고 남동생을 비난했고, 사진으로 영상 만들기는 해프닝 비슷하게 끝이 났다.

엄마는 이 기회에 사진들을 좀 더 안전하게 보관하고 싶어 하셨기에 코팅을 해드리기로 결정했다. 오랜만에 엄마 집에 보관된 사진 앨범들을 펼쳐 놓고 보니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기억도 복습이 필요해서 자주 복습했던 일들은 기억을 기억하게 되어 오래도록 남게 되지만, 복습하지 않은 기억들은 언제인지도 모르게 사라져 버려 어떤 사진들은 낯설기만 하다.

하지만 내가 겪은 일이 아닌데도 선명하게 각인된 사진이 있다. 엄마아빠의 결혼사진들이다. 꽤 여러 장의 사진이지만 한 장이라고 해도 무리가 아닌 것이 어떤 사진이든 엄마와 아빠의 표정은 똑같다. 아빠는 활짝 웃고 있고, 엄마는 짙은 화장을 하고 무표정한 얼굴이다. 짙은 화장의 엄마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 얼굴이 너무 어리고 예쁘다. 스물두 살의 엄마가 결혼을 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이 예쁘고 어린 신부가 어떤 삶을 살게 될지 잘 알고 있다. 오랫동안 지켜 봤고, 들어왔던 이야기들.


엄마는 언제나 나보다 스물 세 해 앞서 살아가고 있다. 나는 가끔 내 나이 때의 엄마를 가늠해 본다. 마흔다섯의 엄마는 부식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다. 젊은 시절을 떠올릴 때 엄마는 언제나 잠과의 사투를 이야기한다. “그땐 왜 그렇게 잠이 왔던지. 잠 한 번 실컷 자 보면 소원이 없었다.” 날도 새기 전인 깜깜한 새벽에 아빠의 트럭에 실려 농산물시장에 나간다. 그날 팔 부식들을 사기 위해서다. 엄마는 그날 장사에 필요한 것들을 메모하는 법이 없다. 그것은 오직 엄마의 머릿속에만 있다. 엄마는 복잡한 시장을 요리조리 돌아다니며 능란하게 사장님들과 가격 흥정을 한다. 엄마는 단골이라고 해서 정에 이끌려 밑지는 거래는 절대 하지 않는다. 거래가 불만족스러워지면 언제든 단칼에 끊어내고, 만족스러운 거래의 사장님에게는 확실하게 눈도장을 박고, 엄마를 각인시킨다. 이런 일들을 엄마는 어렵지 않게 해낸다. 마흔다섯의 나이를 나의 모습에 비추어 보면 언제나 마음 한편이 뜨거워진다. 마흔다섯의 나는 아직도 이렇게 어리고, 어려운 것 투성인데 마흔다섯의 엄마는 너무나 많은 인생 과업들이 즐비했고, 그 일들을 척척해내며 살았다.


“온시, 엄마가 아주아주 맛있는 과자 사줄게.” 설레는 목소리의 엄마가 내 손을 붙잡고 들어간 슈퍼마켓에서 집어 올린 과자가 다이제스트였던 때는 엄마가 몇 살 때였나. 고작해야 서른을 갓 넘긴 나이였을 것이다. 그때 나는 엄마가 너무나 낯설게 보였다. 엄마에게도 취향이 있을 수 있구나 하는 깨달음에서 오는 낯섦.

어느 대학 앞 분식집에서 일하는 엄마의 퇴근 시간에 맞춰 세 남매가 기찻길 따라 배웅하던 날은 엄마가 삼십 대 중반쯤이었을 테다. 그날 분식집에서 팔고 남은 음식을 싸 오던 검정 봉지를 들고 기찻길을 따라 엄마가 나타나면 우리 세 남매는 반가워서 엄마를 부르며 달려갔다. 그렇게 어린 엄마가 손을 휘적휘적 흔들어 우리를 부를 때, 그 얼굴에는 피로가 묻어 있었던가.

엄마는 스물다섯에 엄마를 잃었다. 내 기억에도 남아 있지 않을 만큼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엄마의 엄마는 나를 무릎에 앉혀 두고 베지밀 한 병을 알뜰히 먹이신 후, 가슴이 답답하다고 자리에 누웠다가 그렇게 조용히 떠나셨다고 한다. 엄마는 아직도 가끔 그 이야기를 들려주신다. 담담하지만 절대 잊지 않을 기억을 다루는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엄마를 기억 속에서만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어떤 지극함인지 나는 감히 알지 못한다. 하지만 엄마 사진이 엉뚱하게 복원된 영상 수십 개를 하나하나 다 열어 보고, 몇 장뿐인 엄마의 사진을 잃을까 걱정하는 엄마의 모습이 어쩌면 나에게 언제나 어른인 엄마가 딸인 나와 가장 닮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엄마 곁에서 외할머니 사진을 다정하고 조심스럽게 들여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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