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릿이 있나요

by 온시

호아는 요즘 볼콤의 <우아한 유령>을 연습하고 있다. 나도 굉장히 좋아했던 곡이고, 자주 반복해서 듣던 곡이다. 마침 악보가 언제나 피아노 보면대에 올려져 있으므로 나도 피아노 의자에 앉아 더듬거리며 쳐 보았다. 옆에서 지켜보던 호아가 말한다.

“엄마, 나보다 훨씬 잘 치네?”

“그치? 엄마가 초견이 진짜 좋아. 근데 엄마는 이게 끝이야. 이 이상 발전하질 않아.”

“그건 엄마가 연습을 안 해서 그렇겠지.”

아니라고, 엄마는 진짜 연습해도 늘지 않는다고 다시 한 번 힘주어 말했지만 사실 마음으로 주눅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진짜 내가 그랬던가.’


몇 년 전에 자기 계발서 『그릿』이 크게 유행했다. 나는 그 책을 훑어보며 내 인생을 설명할 때 너무나 필요한 한 문장을 얻게 되었다. ‘나는 그릿이 없는 사람이구나.’ 물론 그 책은 어떻게 하면 그릿을 얻게 될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지만 어떤 이에겐 이렇게 명확한 좌절을 주기도 했다.

그릿은 목표를 향해 정진하는 장기적인 열정과 끈기를 말한다. 나는 평생토록 이것을 가져보지 못했다. 수많은 ‘그때’의 순간들이 떠오른다. 기대와 설렘으로 시작했다가 어느새 체념했고, 의기소침해졌고, 지쳤던 일들이. 어쩐 일인지 많은 일들은 나선형으로 돌아나가며 확장되지 않고 계단형으로 벽에 부딪혔다. 너무나 매끈해서 도무지 올라갈 방법을 찾지 못하고 나는 자주 주저앉고 말았다. 당연하게도 그때의 내 모습을 좋아하지 않는다. 내 나름의 시간과 재화를 투자했음에도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하고 그 일들을 접을 때의 민망함과 절망스러움.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말하지 못하는 마음에 있다. 잘해 낼 수 없을 것 같다는 두려움 때문에 겁을 먹고 먼저 포기한다. 이 두려움은 언제나 잘하소 싶은 마음을 이긴다. 내가 좋아하기로 마음 먹은 것들에 대해 배신당하는 일이 나는 너무나 두렵다. ‘그릿’이라는 단어는 얼마나 간편한가. 나의 두려움을 세련되게 감출 수 있으니.

가만 생각해 보면 나는 생각이 너무 많은 게 문제다.(이 문장을 쓰면서도 나는 벌써 두 번이나 “생각”하고 있다.) 아무 생각 없이 하는 일을 계속할 수는 없는 것인가. 언젠가 김연아 선수 인터뷰 영상을 본 적이 있다. 기자는 김연아 선수에게 “날마다 이렇게 연습하는 것이 힘들지 않으세요?”라고 물었고, 아직 앳된 김연아 선수는 피식 웃더니 대답했다. “그냥 하는 거죠 뭐.”

호아의 피아노 연습은 계속되고 있다. 숙제를 하다 나와 잠깐, 그림을 그리다 나와 잠깐, 식사를 마치고 잠깐. 더듬거리던 연주가 많이 매끄러워졌다. 아무런 표시도 되어 있지 않던 악보에는 복잡한 음표가 놓인 악보 사이 빈 공간에 음표들의 계이름을 쌓아 적어 둔 것들이 보인다. 내가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에 호아는 어느새 이 곡을 완성하게 되겠지.


나는 그것들을 두려움 없이 지켜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