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잃어버린 적이 있나요

by 온시

어렸을 때는 사촌들과의 관계가 돈독하기 마련이다. 위아래로 서너 살씩 차이나는 사촌들이 우글거리던 시절이었다.

큰아버지는 시내 한가운데서 세탁소를 운영하셨다. 어쩌다 세탁소를 가게 되는 일을 우리는 누구나 좋아했다. 그곳에는 평소에 보지 못한 볼거리, 놀거리가 넘쳐났다. 그중 우리가 제일 좋아했던 곳은 백화점이었다. 그곳에는 크게 두 가지의 핵심 활동이 있었다. 첫 번째는 엘리베이터를 타면 만날 수 있는 엘리베이터 걸(언니!)였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 예쁘게 차려입고 인형처럼 서 있는 언니가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몇 층 가십니까?”

그러면 우리는 입을 모아 대답했다.

“7층이요!”

1층에서 7층으로 가는 내내 우리는 인형처럼 예쁜 언니에게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할 수만 있다면 언니의 작은 행동까지도 다 기억해두고 싶었다. 그것들은 우리가 나중에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리는 역할놀이를 할 때 아주 중요한 디테일이 되었다.


그렇게 7층에 도착하면 두 번째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다. 7층은 백화점의 옥상층으로 이곳은 실내 놀이터다. 먼지가 폴폴 날리고, 시소며 구름다리, 미끄럼틀이 있는 놀이터랑은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환상적인 곳! 이곳은 돈이 있어야지만 탈 수 있는 놀이기구들이 있는 놀이터였다. 우리는 대체로 돈이 없었다. 하지만 어여쁘고 매끈한 그것들이 스스로 움직이고, 거기에 탄 아이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설레고 기뻤다. 그리고 딱 하나 돈이 없어도 탈 수 있는 놀이기구가 있었는데 방방이였다. 방방이라면 그래도 동네에서도 가끔 타봄직한 놀이기구였건만 이곳에서 타는 기분에 비할 바 아니었다.


그날은 언제나 백화점 나들이의 리더 역할을 했던 사촌 언니가 없었다. 대신 나와 나이가 같은 A 언니와 언니의 동생, 그리고 내가 있었다. 우리는 리더인 언니가 없어서 백화점 나들이를 할 수 없다는 것에 무척 아쉬워하는 중이었다. 그때 A 언니가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 백화점 찾아갈 수 있을 거 같은데.”


나도 말은 안 했지만 머릿속으로 지도를 그려보고는 내심 자신이 있었던 터라 우리는 굉장히 고무적인 상태가 되었다.



가자 백화점으로~!



그날 우리의 백화점 나들이는 망설임 없이 루틴대로 매뉴얼대로 착착 진행되었다. 일은 집에 돌아오는 길에 발생했다. 1층까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잘 내려온 우리는 1층에 두 개의 출입구가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전혀 모르는 출입구로 나오고야 만 것이다. 호기롭게 출입문을 나섰으나 전혀 처음 보는 거리 풍경에 우리는 당황했다. 그리고 우리는 걸어도 걸어도 나오지 않는 세탁소를 찾으며 차례로 눈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우리는 파출소로 인계되었다. 파출소 의자에 조로록 앉아 눈만 떼굴떼굴 굴리는 사이 우리는 눈물이 말라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파출소 아저씨들은 참 천하태평이었다. 아저씨들은 제가끔 한 번씩 우리를 들여다보고, “괜찮아. 엄마아빠 금방 오실 거야.”라고 위로한다든지, “엄마아빠가 안 찾으러 오면 아저씨 집 가서 아저씨 딸 하자.”라고 농을 친다든지 하고 자리로 돌아갔다. 나중에는 라면도 끓여 주셨는데 나는 그 라면을 먹으면 꼭 아저씨 집에 따라가야 할 것 같아서 입을 꾹 다물고 끝까지 먹지 않았다.


그때 엄마는 우리를 찾으러 시내를 헤매고 있었다고 한다. 그때 엄마가 느꼈을 극한의 공포와 끔찍함에 대해서 우리는 이야기하는 법이 없다. 이 이야기는 해피엔딩이기 때문이다. 거리를 헤매고 다니는 엄마를 경찰 아저씨가 불러 세웠다.

“집이 애기 잃어버렸소?” 엄마는 넋이 나간 채 고개를 끄덕였다. “집이랑 똑같이 생긴 애가 파출소에 앉아 있소.”



우리는 아직도 가끔 그때의 일을 이야기한다. 결코 잘못될 리 없는 안전한 거리에서 제각각 끔찍했을 그때의 일을 해피엔딩으로 회상할 수 있음을 감사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