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매화가 드리운 그늘 아래를 지나가자니 달콤하고 깨끗한 향기가 진동한다.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남편과 나는 이 길을 좋아해서 올해만 벌써 몇 번째 반복해서 찾아오는 중이었다.
“여기 참 좋은데, 왜 아버님은 싫다고 하셨을까?”
남편이 물었다.
“예쁘지가 않다고 하시던데. 수형도 별로고, 언덕바지에 있어서 안정감이 없다고.”
“그래? 그렇게까지 자세히 보신단 말야?”
“여보는 참 무던해.”
“아니야. 나도 좋아하는 것들이 있다고. 좋아하는 향기도 있고, 좋아하는 길도 있어.”
“여보, 진짜 예민한 사람은 좋아하는 게 많은 사람이 아니야. 못 견디는 게 많은 사람이지. 예민함은 소극적인 거라고.”
그런 의미에서 아빠는 진짜 예민한 사람이다.
아빠는 음식을 먹을 때도 식감을 너무나 중요시한다. 아빠가 어렸을 때, 풍족하게 먹을 수 없어 일단 기회가 있으면 무조건 먹어야 했던 시절에도 미역국처럼 부들부들 미끌미끌한 것을 전혀 못 드셨다는 우리 아빠는 일흔 넘은 나이에도 식감 때문에 음식의 불호를 역력히 드러내시곤 한다. 아빠의 식감이라는 것은 가끔 어이가 없을 지경인데 이를테면- 쌈에 싸 먹을 고추를 썰 때 아빠가 딱 원하는 크기와 각도가 있다. 너무 얇게 썰어도 안 되고 어슷어슷 써는 것도 안 된다. 엄마 집에서 고추를 썰 일이 있을 때 굉장히 긴장되는데 아빠가 딱 원하는 한 입 고추의 크기를 맞추기 위해서이다.
아빠는 싫어하는 감촉도 아주 많다. 산책을 하실 때에도 감촉 때문에 안 밟고 싶은 산책길이 많다. 아빠는 맨발 걷기를 하시는 것도 아니고, 운동화를 신고 걸으신다.
아빠는 예민함은 감정에서도 여지 없어서 직장생활하시는 것을 힘들어하실 때가 많았다. 엄마와 아빠가 나누던 이런 대화가 생각난다.
“일 가기 싫어. 마음에 구멍이 뻥 뚫린 거 같아.”
같이 일하시던 분들이 한꺼번에 그만두게 되셨을 때 아빠는 덩달아 일 나가기를 싫어하셨다. 그때 엄마가 말씀하셨다.
“온시 아빠, 일 가고 싶은 사람이 어딨어. 돈은 기분 없이 그냥 버는 거야.”
우리 삼남매가 직장생활에 그다지 큰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것도 유전적인 경향일지도 모르겠다. 엄마를 닮았으면 참 좋았을 텐데.
하지만 아빠의 예민함을 가장 닮은 것은 바로 나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아빠를 몹시도 사랑했는지 모른다.
언젠가 젊은 아빠가 지게에 나를 업고 가던 날이 생각난다. 아마 할머니가 시골에서 농사를 지을 때였을 것이다. 모내기를 도와 드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빠의 지게에 실려 갈 때 얼마나 의기양양하고 자랑스러웠는지. 아빠가 흰 무를 우적우적 씹어 먹던 소리와 어깨 너머 건네주신 무 조각을 받아 먹고 너무 떫어 퉤퉤 뱉으니 아빠가 웃으셨던 것도 기억난다.
나는 아빠에게 업히는 것을 너무나 좋아했다.
아빠의 등에 맨 마지막으로 업혔던 날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날은 제삿날이어서 큰집에 갔다. 나는 메밀 알레르기가 있는데 무심히 메밀묵을 먹었다가 탈이 난 상태였다. 온몸이 가렵고 발진이 일어났다. 밤이 아주 늦은 시각이라 약국도 병원도 갈 수 없었다. 대신 아빠가 나를 업고 큰집 대문을 나와 동네를 걸어 다녔다. 차갑고 청량한 밤바람에 가려움증이 가라앉는 듯했다. 이미 많이 자란 나는 아주 오랜만에 아빠의 등에 업힌 셈이었다. 마침 친구를 만나고 돌아오는 사촌오빠와 마주쳤을 때, 되게 아픈 사람처럼 아빠 등에 딱 붙어 아빠와 오빠가 이야기 나누는 걸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 이후로 아빠 등에 업히는 일은 없었지만 손을 잡고 걷는 일은 그 뒤로도 꽤 오랫동안 했던 것 같다.
아빠의 손을 잡고 걸으며 속담 말하기 내기를 했던 기억도 난다. 어느 순간 아빠가 아주 이상한 속담들을 말하기 시작했는데 이런 거였다.
할머니는 바닥에 앉아서 쑥을 판다.
이가 아프면 치과를 가야 한다.
고개를 갸우뚱하며 듣던 나는 ‘조광수 치과는 하나도 안 아프게 이를 빼준다.’는 문장을 듣자마자 아빠가 문장을 지어서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아마 아빠랑 치과를 가는 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야기를 들을 때 조금의 디테일이라도 이해가 되지 않거나 불분명하면 도무지 다음으로 넘어가지 못하는 아빠에게 내가 글을 쓰고 있고, 그 글을 인터넷에 올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게 어떻게 이루어지는 일인지 백 가지쯤 질문을 하신 후에 아빠 나름의 이해에 도달하고, 몇 개의 글을 큰 글씨로 뽑아서 가져오라셨다.
나는 안다. 아빠가 내 글을 읽는다면 또다시 아빠가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수없이 많은 질문들을 쏟아내실 거고, 그 질문에 대답하다가 나는 문득 언성을 높이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하지만 나는 아빠가 사소한 것 하나도 쉽게 지나치지 못하고, 스스로에게 완벽한 상태를 추구하는 예민성을 존중하고 또 사랑한다.
또 하나, 누군가와 함께 걸을 때 꼭 오른쪽 자리를 사수하는, 그렇지 않으면 불편해서 걸음걸이가 어정쩡해지는 나 또한 존중하고 사랑한다. 홍매화 향기를 맡다 스텝이 엉켜 남편의 왼쪽에 서게 되자마자 나는 얼른 오른쪽으로 자리를 옮겨 걷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