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은 밤에 만나 술잔을 기울이는 사이에서 점점 다른 활동들을 함께 하는 사이가 되어 갔다. 저녁이 아닌 식사를 같이 했고, 함께 드라이브를 했다. 배드민턴을 쳤고, 영화를 함께 보기도 했다.
하루 이틀 눈이 내리는 밤이었다. 유진을 만나기 전 해민은 친구를 만나 유진에 대해 고민 아닌 고민을 털어 놓았고, 유진과의 약속 장소에는 친구와 함께 갔다. 해민은 극구 말렸지만 친구는 유진의 얼굴을 보고 싶다며 기어이 따라왔다. 넉살 좋은 해민의 친구는 유진을 보고 생글생글 웃으며 인사했다.
“말씀 많이 들었어요.”
해민은 부인도 못한 채 옆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우리 해민이 잘 부탁해요. 해민이가 늘 손이 차요. 손은 늘 따뜻하게 부탁드립니다.”
해민으로서는 잔뜩 어색한 일별이었다. 유진은 어쩐지 기분이 좋아졌지만 극장으로 걷는 내내 해민의 차가운 손이 신경 쓰였다.
영화 상영시간이 좀 남아 있었으므로 둘은 상영관 앞 의자에 앉아 기다려야 했다. 해민이 화장실에 다녀왔을 때, 유진이 말했다.
“커피 마실래?”
유진의 손에 캔커피가 들려 있었다. 해민은 유진에게 커피를 건네 받았다. 따뜻했다.
“따뜻한 커피가 나오는 자판기가 있었어?”
유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두 손으로 커피를 쥐고 앉은 해민의 옆모습을 훔쳐봤다. ‘해민이가 늘 손이 차요.’ 그 말을 들은 이후, 유진은 내내 그 생각에서 놓여날 수가 없었다. 해민이 잠시 자리를 비웠을 때 자판기에서 뽑아 온 캔커피를 손에 쥐고 놓지 않았다. 할 수만 있다면 손의 온기 전부를 빼앗기고 싶었다.
겨울에도 손이 시려워 본 적이 거의 없었기에 더 해민이 걱정되었다. 평소에는 긴 바지에 부츠도 잘 신던 애가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 이렇게 눈 오는 밤에 스타킹을 신고 발목이 드러나는 치마를 입고 나왔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플랫 슈즈 위로 드러난 발등에도 손을 대 주고 싶었다.
그날, 마지막 상영시간에 영화를 보러 온 사람은 둘 뿐이었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자리에서 일어나 주위를 둘러 보았지만 정말 둘뿐이어서 유진은 조금 놀랐다. 이 시간을 기억하고 싶어 텅 빈 상영관의 의자를 사진으로 찍었다. 해민은 조용히 유진의 모습을 지켜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