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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아들을 위한 책꽂이 만들기

1.

by 만목

[돌발 퀘스트 – 책꽂이를 제작하시오.]

평소에 아무런 요구도 하지 않던 고등학교 갓 입학한 첫째 아들이 책꽂이가 필요하다고 한다. 아내 선이 이데아에서 구입을 고민 중이지만 제작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보상 – 목공기술 30 상승, 아내의 호감도 10 상승

퀘스트를 수락하시겠습니까? Y/N


생각보다 회사 연수가 많아 지친 춘은 눈앞에 뭔가 이상한 게 보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손을 휘휘 내저어도 앞에 보이는 글씨는 사라지지 않았다. 마치 홀로그램 같았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Y를 누를 것처럼 검지를 가져다 대었다. 그러자 Y라는 글씨가 환하게 밝아지더니 모든 글씨가 눈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잠깐 멍하니 있던 춘은 정신을 차리고 앞에 앉아 저녁을 먹고 있는 아내를 바라보았다. 별일 없이 잘 먹고 있는 모습이다.

식사를 마친 춘은 아내 선에게 어떤 책꽂이를 원하는지 물었다. 잠시 뭔가를 생각하던 아내가 춘의 옷깃을 붙잡고 첫째 아들의 방으로 이끌었다. 첫째 아들의 방은 길이만 길고 폭이 좁은 방이었다. 그래서 많은 가구를 들여놓기 어려워 책상 하나와 책상에 딸린 작은 책꽂이 하나만 달랑 놓여있었다. 그런데 고등학생이 되더니 이것저것 장식해야 할 책이 많아진 듯했다.

“여기 창문 아래로 책꽂이 하나 있으면 좋을 것 같아. 그런데 인터넷을 검색해 봐도 적당한 크기가 없더라구. 그냥 작은 걸로 살까?”

휴대폰을 들여다보던 선이 3만 원짜리 책꽂이를 보여준다. 하지만 춘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요즘 싼 가구는 거의 다 중국산 MDF라서 건강에 안 좋을 것이 너무 뻔하기 때문이었다. 아마 밖에 나갔다가 방에 들어오면 포름알데히드 냄새로 머리가 아플걸? 잠깐, 정정할 게 하나 있다. 휴대폰을 거들떠보지도 않은 건 가까운 게 안 보여서 그런 거다. 잘 말은 안 하지만 춘은 이런 사실이 슬펐다. 어쨌든 잘 보이지 않아서 선에게 원하는 치수를 재어달라고 부탁을 했다. 귀엽게 줄자를 가지고 열심히 재는 선이었다.

“가로는 110에 높이는 90이면 될 것 같아. 깊이는 30 정도?”

“알았어. 다행히 회사에 내가 사다 놓았던 판재랑 자투리 나무가 좀 있을 거야. 잠깐, 종이에 적어 둬야겠다.”

주변을 둘러보던 춘은 종이가 눈에 띄지 않아 책표지 같은 것을 찾아 치수를 옮겨 적었다. 간단하게 그림도 그려두는 춘이었다. 그리고 며칠이 흘렀다.


“나무 언제 잘라오는 거야? 좀 되지 않았어? 그냥 살까?”

아내 선이 보챘다. 춘은 곧 가져오겠다고 말을 하고 머릿속으로 날짜를 꼽아 보았다. 구상을 하며 나무를 자르려면 시간이 좀 걸리는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퇴근 시간이 끝나고 마침 시간이 되었다. 춘은 혼자 목공실에 남아 원하는 치수로 나무를 잘랐다. 1시간은 넘게 걸린 것 같았다. 레드파인 집성목으로 판재만 7장이 되었다. 그리고 뒷판으로 쓸 커다란 판재 나무까지 해서 두 번 오르내리기 귀찮아 한 번에 다 들었다. 무거워서 질질 끌고 가는데 당직 서던 아저씨가 춘을 알아보고는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아, 첫째 아들 책꽂이 만들어 주려고요.”

뻘쭘하게 혼자 말하고 잽싸게 주차장으로 이동했다. 팔이 떨어져 나가는 것 같았다. 사실 별로 무게가 많이 나가는 게 아닌 데 그중에 자투리 나무가 물푸레나무여서 매우 무거웠다. 그래도 무사히 집으로 도착하여 선을 불렀다. 혼자서 두 번 나르기 싫어서 아내를 귀찮게 하는 춘이었다. 하지만 그날 책꽂이를 조립할 수는 없었다. 선은 회사에서 힘들었다고 꼼짝도 하기 싫다고 했고, 첫째는 고등학생이라 저녁 자율학습을 하느라 아직 안 들어왔고, 둘째는 2박 3일 수련회를 떠났기 때문이었다.


토요일이 되었다. 올해는 꽃이 순차적으로 늦게 피면서 오랜만에 계절이 계절다웠다. 작년에는 개나리며 목련, 벚꽃 등이 한 번에 다 피어버려서 순식간에 봄이 끝났었다. 이번에는 벚꽃놀이 가기에도 딱 좋은 주말이라 춘은 선에게 벚꽃 구경을 가자고 했다. 물론 그래 봐야 근처 안양천변으로 가는 거였지만 이럴 때 같이 나가는 거라고 춘은 생각했다. 그런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가는 비였지만 우산은 필요했다. 선이 우산 한 개를 챙겼다. 춘은 안 챙겼다. 밖은 봄바람이 무척 세게 불었다. 벚꽃 잎이 눈처럼 휘날렸다. 춘이 한 손으로 우산을 잡아들고 아내 선이 팔짱을 끼고 같이 걸어야 했다. 벚꽃은 참 예뻤다. 초록빛 이파리가 돋아나는 버드나무랑 느티나무도 파릇파릇 생명력이 넘쳐흘렀다. 그리고 바람에 꺾인 소나무가 보였다. 선이 물었다.

“나무가 꺾였네. 이거 잣나무야?”

“아니, 소나무야.”

춘이 말했다. 적송이었다. 레드파인. 아! 오늘은 집에 돌아가서 책꽂이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는 춘이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온 아내와 춘은 책꽂이를 만들기로 했다. 토요일이지만 첫째나 둘째 모두 시험이 코앞이라 도와주지 못한단다. 핑계도 참 좋다. 어쨌든 아내가 도와준다는 말에 춘은 연장을 챙겼다.

양옆에 기둥으로 될 판재를 선이 세워 들었다. 춘은 먼저 맨 아래 받침 부분을 지탱시키기 위해 카프라(젠가) 나무를 갖다가 목공풀로 붙였다. 시간이 지나 그 위에 받침대를 얹고 드르륵 나사못을 체결했다. 아내가 똑바로 잡고 있지 못했지만 춘은 절대로 싫은 소리를 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왜냐하면 예전에 어떤 일로 선이 도와주었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일을 잘못한다고 춘이 뭐라 해서 선이 굉장히 기분 나빠했던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다른 말 없이 일에 집중하며 책꽂이를 조립해 나가자 점점 그럴듯한 모양새가 되어갔다. 선도 정말 기뻐했다. 맨 위에 지붕을 얹을 때는 뒷판이 조금 더 길어 톱으로 잘라내야 했다. 그리고 드디어 완성!


“사진 찍을 때 프리지아 꽃 같이 두면 안 될까?”

“안 어울려!”

춘의 제안을 선이 거절했다.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어서 춘은 아내와 둘이 책꽂이를 들고 아파트 1층 현관 복도로 나갔다. 그리고 모서리 부분을 400짜리 사포로 열심히 갈았다. 혹시라도 손에 가시가 박히거나 정신이 딴 데 팔려 모서리에 손가락이 베이면 안 되니까 말이다. 지나가는 위층 아줌마가 뭘 하나 쳐다보며 지나갔다. 왠지 창피해서 더 열심히 사포질만 하는 춘이었다. 마지막으로 물티슈를 이용해 톱밥과 먼지를 닦아내고 다시 집으로 들였다. 바닥을 들어 바닥보호패드를 붙이고 첫째 아들 방으로 끌고 밀어서 이동. 공부하던 첫째 아들이 ‘오오’라고 감탄하는 것으로 모든 과정이 끝! 오일칠을 하지는 않았지만 사용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춘은 아내 선과 아들을 바라보며 뿌듯하게 생각했다.


[퀘스를 클리어했습니다. – 목공기술 30 상승, 아내의 호감도 10을 획득하였습니다. 경험치 획득은 레벨업 및 추후 캐쉬 수급에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1100*800*300 책꽂이 제작 2025.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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