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퀘스트 – 꽃을 선물하는 이유를 알아내시오.]
꽃을 좋아하는 후배를 언젠가 또 만날 예정이다. 꽃을 좋아하는 이유와 꽃들을 선물하는 이유를 물어서 공감을 얻으면 좋을 것 같다.
보상 – 인간관계 능력 10 상승 / 실패 시 부장 신임도 –10 하락
“부장님~ 춘 부장님!”
춘이 한참 계단을 오르고 있을 때 멀리 복도에서부터 외치는 소리가 있었다. 사실 춘은 쓸데없이 업무 생각에 빠져 뭔가 시끄럽구나 하고 있었는데 뒤에 있던 동료 ‘희’가 춘을 불러 세웠다. 춘은 먼저 올랐던 층계를 다시 내려갔다. 그때 춘보다 조금 아래 계단에 있던 희가 엄청나게 반가워하며 손님을 맞이했다. 복도 멀리서부터 춘을 불렀던 사람은 몇 달 전에 전근을 가서 다시 만날 거라고 생각도 안 했던 후배였다. 더구나 연수 때문에 회사 밖으로 이곳저곳 다니고 있던 춘은 이런 게 인연인가 싶었다. 한참 후배인 ‘정’은 딱 봐도 배가 많이 불러 있었는데 한 달 뒤에 출산을 한단다. 그런데도 층계를 5개나 올라오고 있었다. 귀여운 데가 있는 정이었는데 왠지 배부른 모습도 귀엽다고 하면 안 될 것 같아 가만히 있는 춘이었다. 한 손에는 프리지아 꽃다발을 한 봉지 가득 들고 있었다. 정은 플로리스트랑 유튜버를 부업으로 꿈꾸고 있는 능력 있는 새댁이었다. 레우코스페르뭄 같은 무지무지 어려운 꽃이름도 외우고 있었다. 한 번은 춘이 꽃을 좋아한다고 했었는데 그 말을 들은 뒤부터 가끔 이름 모를 꽃을 꽃병에 꽂아서 책상 위에 놓아주기도 했던 정이었다.
“그렇게 불렀는데 그냥 가시네, 휴. 이거 가져가요, 부장님.”
“어, 나도 오늘 본사에 오는 길에 트럭에 한가득 파는 프리지아 보고 생각했는데. 헐.”
정이 꽃다발 봉투에서 손에 잡히는 대로 프리지아 묶음을 떼어서 춘과 희에게 건넸다. 워낙 밝고 하얀 얼굴에 반가움이 가득 드러나니 덩달아 마음이 따뜻해지는 춘이었다. 프리지아를 받아들고 헤어진 뒤, 물에 담아두려고 줄기를 다듬은 뒤 투명한 테이크아웃컵에 담갔다. 샛노란 꽃이 향기도 참 좋았다. 금세 사방으로 꽃향기가 퍼진다.
춘이 프리지아 꽃을 알게 된 건 고3이 끝나고 대학교 입학 허가를 통지받았을 때였다. 당시 잘 알고 지내던 친한 여동생이 대학교 입학이라는 부러운 출발을 축하하며 선물해 줬었다. 춘의 집은 걸어서 꽤 올라가야 하는 언덕 위에 있었는데, 그 여동생이 프리지아 꽃을 뒷짐으로 숨기고 따라와서 인사를 건네며 전해준 것이었다. 서프라이즈나 깜짝 선물에 감동 같은 걸 잘 받지 않던 춘은 그날 꽃을 선물 받고 큰 감동을 받았다. 돌이켜보면 엄청난 반응을 보여주며 넘치는 감사를 했어야 했다고 춘은 생각했다. 당시만 해도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숫기 없는 춘은 소녀의 마음도 몰라주는 매정한 남이었을 것이다. 대신 그 뒤로 춘도 가끔은 다른 사람에게 프리지아 꽃을 선물할 때가 생겼다. 힘을 내라고 응원할 때 말이다. 혹시 후배인 정도 어디선가 꽃을 선물 받고 좋았던 추억에 플로리스트가 되려고 하는 건 아닐까? 퀘스트 때문이 아니라도 다음에 혹시 만나게 된다면 그걸 꼭 물어보아야겠다고 춘은 생각했다.
집에 와서 프리지아를 꽂을 꽃병을 찾았지만 마땅한 게 없었다. 그러다 식초를 담아 두었던 삼각 플라스크 모양의 유리병을 찾아냈다. 유리병에 물을 가득 담고 프리지아를 꽂고 지끈으로 중간에 고정을 시켰다. 그리고 식탁 위에 두었다. 노랗게 하나씩 꽃이 피기 시작하니 참 예뻤다. 아내 ‘선’에게 춘이 물었다.
“예쁘지 않아?”
“뭐, 예쁘네.”
아내 선은 프리지아 꽃에 대해 담담했다. 뭐야. 그동안 꽃을 선물 받아도 다들 담담했던 건가라고 춘은 조심스럽게 생각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