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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혈압을 잡아라

3.

by 만목

[일일 퀘스트 – 혈압을 떨어뜨리시오.]

게을러도 정도껏 해라. 더 나이 들면 운동의 효과가 지금보다 많이 줄어든다. 암울한 미래를 대비하여 혈압을 낮추고 체력을 길러야 한다.

매일 2km 달리기(시속 10km 이상 유지), 턱걸이 12개, 벤치프레스 12개, 랫 풀 다운 12개

보상 – 체력 1 상승, 혈압 120이하 유지

실패 시 혈압약 처방 후 죽을 때까지 복용 필수


“나, 헬스장 갈 거야.”

아내 선이 갑자기 집 앞에 있는 헬스장에 간다고 했다. 하필 그때 춘의 눈앞에 퀘스트라는 문구가 또다시 떴다. 이번에는 일일 퀘스트다. 시공간 차원이 겹쳐지는 이야기를 다루는 웹소설도 아닌데 왜 춘에게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지난번 프리지아 퀘스트는 끝나지도 않았는데. 춘이 저도 모르게 소리를 냈다.

“아, 이거 또 왜 이래?”

“왜? 아무래도 나 살 빼야 할 것 같아서 그런 건데. 그리고 이거라니? 내가 이거야? 죽을래?”

춘은 급하게 뒷머리를 만지며 변명을 했다.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 뒷머리가 답답한 게 좀 기분이 나빠서.”

역시 춘은 임기응변이 강했다.

“어? 뒷머리? 작년 여름에 같이 건강검진 받을 때 혈압이 높았지 않아?”

“어, 그랬어. 그런데 그날 계단으로 올라가서 그런 거라고 간호사가 3번인가 다시 재 줘서 127이었을 걸? 처음엔 137이었어.”

“그럼, 나랑 같이 헬스장에 가자. 거기 혈압 측정기도 있거든.”

일하고 와서 도무지 기력이 없던 춘은 어쩔 수 없이 혈압 측정 때문에라도 헬스장에 가야 했다. 믿기지 않겠지만 그렇게 춘은 아내의 손에 이끌려 난생처음으로 헬스장에 가보게 되었다. 첫인상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시큼한 냄새가 왠지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가뜩이나 냄새에 예민한 춘은 당장 뛰쳐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혈압 측정 결과. 139였다.

“어? 이거 잘못된 거 아냐?”

춘이 그렇게 말하자 선이 재어 봤다. 아내 선은 110정도 나왔다. 기계가 고장난 게 아니었다. 춘의 심혈관이 고장난 거였다. 어쩐지 작년부터 올해 초까지 앉아서 일만 할 때 힘들고 머리가 아프더니 혈압이 높아서 그랬었구나. 병원을 싫어하는 한국의 흔한 남자인 춘은 이번에도 병원 가는 건 정말 싫었다. 그래서 그 길로 당장 관리사무실로 내려가 헬스장 회원권을 끊고 돈을 지불했다. 아파트 단지 주민만 사용할 수 있는 시설이라고 가격은 좀 저렴했다.


믿기지 않게도 트레드밀을 처음 해보는 춘은 어지러웠다. 꾹 참고 2km를 달리고 바닥으로 내려왔는데도 앞으로 나가는 느낌이 들며 울렁거렸다. 그동안 체력까지 떨어진 게 사실이었는지 힘들고 현기증까지 났다. 춘은 잠시 아무데나 앉아서 숨을 돌렸다. 아내 선이 트레드밀 위에서 열심히 걷고 있는 게 보였다. 시속 6km로. 그러고 보니 선은 60분씩 걷는다고 자랑했었다. 칭찬을 해줘야겠다고 생각하는 춘이었다.

숨을 돌린 춘은 오랜만에 턱걸이 12개를 하느라 정말 죽는 줄 알았다. 어렸을 때는 더 많이 했었는데 말이다. 춘은 위에 매달린 봉을 끌어 내리는 랫 풀 다운과 벤치에 누워서 역기 같은 걸 들어 올리는 벤치 프레스를 각각 12개씩 했다. 덤으로 윗몸 앞으로 굽히기와 엎드려서 무릎 뒤로 바를 올리는 레그컬 머신도 하는 춘이었다. 그러고 보니 헬스장 운동 기구의 이름도 참 어렵다.

그렇게 달리기와 근력운동을 하고 난 춘은 답답함이 좀 가시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힘든 건 힘든 거였다. 사실 게을러서 운동을 못하는 게 아니라 일을 너무 많이 해야 해서 힘들고, 그것 때문에 체력이 딸려서 못하는 거라고 항변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 춘이었다. 세상이 너무 바쁘게 돌아간다고!


[오늘의 일일 퀘스트 완료]

보상 – 체력 1 상승

혈압은 한 번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앞으로 한 달간 꾸준히 달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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