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저작권 글 공모전 제출용
달콤한 찔레꽃 향기가 하얗게 피어오르는 오월. 사방에 피어있는 꽃들이 아직 봄이 다 끝나지 않았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하지만 한낮의 더위는 점점 더 강렬해지고 있었다. 윤대감 댁에서 3년째 일하고 있는 만목은 그런 더위도 잊을 정도로 새로운 일거리에 정신이 팔렸다.
“그래? 누가 만들었다드냐?”
윤대감 댁에서 우두머리 역할을 하는 수노(首奴)였던 동구 형님이 물었다. 동구 형님은 글도 읽고 쓸 줄 아는 능력자였다. 만목은 그런 동구 형님의 비위를 맞춰가며 글을 배우려 몹시 애를 썼다. 하지만 놀랍게도 천자문을 던져준 건 윤대감 댁 막내 아씨였다. 이전에 만목이 최진사 댁에서 머슴살이하면서 글을 조금 배웠다는 걸 밝힌 적이 있었는데 그걸 기억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달래골에서 소목장으로 일하고 있는 김현이라는 자였습니다.”
“그래. 연락은 취해 두었고?”
“네. 동구 형님 말씀대로 정오 무렵에 여기로 들르라고 전했습니다.”
시원한 행랑채 마룻바닥에 앉아 있으려니 더위가 좀 가시는 것 같기도 했다. 만목은 김현이라는 자가 가지고 올 기기가 궁금했다.
해가 꼭대기에 떠올랐다 싶을 때쯤 김현이 찾아왔다. 손에는 보자기로 싼 무언가를 든 채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간단한 인사치레가 끝나고 동구 형님이 물었다.
“그러니까 그게 캔디 디스펜사라는 것이오?”
“네. 양이들 하는 말로 캔디 디스펜서라고 하던데 청국을 통해 건너온 물건을 한 번 보고 나름 독창적으로 만들어 봤습니다.”
그렇게 대답하며 김현이 보따리를 끌렀다. 유리로 만든 병이 반짝반짝 매우 귀한 물건처럼 보였다. 병 안에는 알록달록한 옥춘당이 차곡차곡 들어가 있었다. 유리병 아래로 서랍처럼 생긴 작은 상자가 하나 있고, 그 상자에 고리가 한 개 달려있는데 김현이 그 고리를 잡아당기자 상자에 옥춘당 하나가 딱 떨어져 내렸다. 사탕이 귀해 쌀가루와 엿을 섞어 만든다는 바로 그 옥춘당이었다. 만목이 냉큼 옥춘당 하나를 들어 동구 형님께 바쳤다. 서랍을 닫았다 다시 고리를 당기자 옥춘당 하나가 또 떨어져 내렸다. 만목이 보기에도 참 신기했다. 동구 형님이 옥춘당을 입에 집어넣으며 감탄했다.
“하, 눈썰미 하나는 기가 막히는구만.”
“그게, 제가 원래 눈썰미로 먹고 사는 직업인지라. 자랑이 아니라 세간이나 문방구 같은 건 한 번만 보면 더 잘 만들 수 있습죠. 그래도 이건 양이 것과 방식만 조금 비슷할 뿐이지 제가 창의적으로 제작한 저만의 물품입니다.”
“그건 그렇고. 이 귀한 유리병은 어디서 구할 수 있겠는가?”
“유리병이 문제긴 합니다. 유리병을 전부 청에서 수입하기도 만만치 않고 하여 도자기나 목재로 만들 생각입니다. 아쉽게도 안이 들여다보이진 않겠지만요. 대신 유리병으로 만든 건 아주 고가품으로 판매하시면 될 겁니다.”
“좋아, 좋아. 그런데 디스펜산가 뭔가는 좀 어렵고 이걸 부를 이름이 따로 있어야 할 텐데 …….”
그때 만목이 치고 나갔다.
“동구 형님, 이름은 대감 마님께 부탁드려야 하지 않을까요?”
그 말을 들은 동구 형님이 고민이 된다는 듯 한 차례 콧수염을 문질렀다. 그도 그럴 것이 마침 윤대감이 한양에 있는 친척의 혼사로 집을 비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걸 알아챈 만목이 말을 덧붙였다.
“대감 마님께서 출타 중이시니, 막내 아씨께 여쭙지요?”
“오호, 그게 좋겠다. 시간도 만만치 않으니.”
곧 동구 형님과 만목이 함께 캔디 디스펜서를 들고 막내 아씨를 찾았다. 한참 국화와 포도송이 같은 그림을 그리고 있던 막내 아씨가 그간의 이야기를 듣고는 손을 멈췄다. 그리고 경상 위에 놓인 캔디 디스펜서를 조작해 보았다. 신기하게 옥춘당 하나가 똑 떨어진다.
“고민할 게 무어냐? 사탕 뽑기가 더 그럴듯하겠지만 사탕(砂糖)을 구하긴 힘드니, 그냥 옥춘당 뽑기로 하면 될 것을. 아버지도 용납하실 게다.”
유리병을 톡톡 건드리며 곱고 예쁜 눈으로 옥춘당 뽑기를 바라보는 막내 아씨였다. 머리끝에 드리운 붉은 색 댕기가 옥춘당의 빨간 색과 참 잘 어울렸다. 이건 분명 통한다. 만목의 예감은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김현을 도와 옥춘당 뽑기 기기를 만들어 저자에 들이자 날개 돋친 듯 상품이 팔려나가기 시작했다. 특히 유리병을 기본으로 하고 무늬가 예쁜 괴목과 색깔이 예쁜 호두나무로 받침대와 서랍을 만든 제품은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제법 팔려나갔다. 김현과 만목에게 떨어질 돈도 적지 않을 터였다. 그러던 어느 날.
“큰일 났습니다! 큰일이요.”
헐레벌떡 소목장 김현이 나타났다. 들어보니 한양 시전에 옥춘당 뽑기랑 똑같이 생긴 상품이 별안간 등장했다는 말이었다. 그간 애써서 알아보고 땀 흘려 준비했던 사업이란 걸 생각하면 뒤통수를 아주 강하게 처맞은 느낌이 들었을 것이었다. 이번에는 동구 형님이 바로 대감님을 찾았다.
“흐흠. 내 잘은 모르지만 금난전권이 폐지된 지 오래되었다 한들 저자에 대한 권리가 아직 우리에게 있지 않더냐?”
“그게 ……. 지방 시전이야 저희의 입김이 세긴 하지만, 한양 시전은 어렵습니다요. 더구나 금난전권과 상관이 없는 게 이번 일이 일반 상인이 주도한 것이 아니고 시전 상인 몇이 배째라하고 올린 상품이라고 하니 더 그렇습죠.”
“허허. 내가 나서기엔 모양새도 안 나고. 허허. 참.”
“하지만 이대로 있으면 그동안의 노력과 이윤에 대한 권리가 봄눈 녹듯 송두리째 사라지게 되옵니다. 대감 마님.”
“흠. 알겠다, 알겠어. 동구 너와 만목이는 한양에 올라갈 채비를 하거라.”
그렇게 동구 형님과 만목은 윤대감을 따라 높고 높은 호조 판서와 형조 판서를 순서대로 알현할 수 있었다. 그런데 윤대감이 어르신이라고 불릴지는 몰랐던 만목이었다. 나라의 재정을 관리하는 호조 판서가 말했다.
“어르신, 한양의 시전 상인들은 연줄이 곳곳에 닿아 있습니다. 함부로 내려라 올려라 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한참을 생각에 잠긴 척하던 윤대감이 호조와 형조 판서에게 제안을 건넸다.
“그럼, 우리 쪽도 포기할 건 포기할 테니 그쪽도 정리를 해주면 좋겠소.”
“포기하신다면 어떤 걸?”
“암암리에 갖고 있던 지방 저자에 대한 권리, 그 저자권을 포기하겠소. 그렇게 하면 지방에서도 사설 상인들을 통해 더 많은 세금이 걷힐 것 아니겠소? 그러니 모든 지방에 그렇게 진행할 것을 주상 전하께 아뢰시오. 내 반대하는 세력들을 잠재우기 위해 할 수 있는 한 힘껏 도울 테니. 그리고 이는 우리나라 천년의 대계임도 분명히 해주시오.”
호조 판서와 형조 판서는 눈이 동그래졌다. 저자권만 해도 작은 권리가 아니었다. 그리하여 호조판서가 물었다.
“천년의 대계라 하심은?”
“자고로 자기 자식보다 귀한 것은 없는 법. 학자들이 쓴 책이나 장인들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물품은 자식과 다를 바 없으니 그보다 귀한 것이 어디 있겠소? 그에 대한 대가를 지급하는 것 또한 당연한 이치니 이를 위해 ‘저작권’이라는 것을 학자와 장인들에게 베풀어 다른 이들이 베끼지 않도록 권리를 보장하여 주시오. 내 예측하기에 이 나라 천년의 부흥을 이끌 시초가 될 것이 분명하오.”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듣던 형조 판서가 답변했다.
“그렇게 되면 권리를 보장받은 장인들이 아무래도 물품을 더 정성 들여 만들겠군요. 흠. 그런데, 관리하고 판단하는 저희는 일이 매우 많아지게 됩니다만?”
“크흠. 하는 일이 뭐가 있다고 그러시오? 나쁜 것이 아니라면 언제나 일은 되는 방향으로 하시오, 되는 방향으로. 면신례 때부터 그렇게 일러두었건만. 쯧.”
그렇게 옥춘당 뽑기로 인해 저작권이 정당한 권리로 받아들여지고 그 사실이 기폭제가 되어 조선의 후대에 상업과 학문의 발달이 일어나 훨씬 더 살기 좋은 세상이 도래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세상 사람들이 주상 전하의 성은에 감복하고 임금님을 칭송하기 시작하였으며 2백 년이 지난 뒤에도 끊어지지 않았다. 한편 야사에 의하면 ‘저작권’이라고 이름 붙인 사람은 당시 막 글을 배웠던 만목이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으며, 만목을 도운 주변 인물들 또한 역사학자들에게 높이 평가받아 논문 속 감초 같은 역할로 자주 등장하게 되었다고 한다.
<단어 설명>
수노 : 소속 관서의 일을 돕거나 집안의 가사를 총괄하는 우두머리 사내종. 공‧사노비 포함
소목장 : 목재로 장롱이나 수레와 같은 생활용품을 만드는 목공 기술자
세간 : 집안 살림에 쓰는 온갖 물건
양이 : 외국 사람을 오랑캐로 얕보는 말
저자 : 시장을 예스럽게 이르는 말
괴목 : 회화나무
금난전권 : 난전을 금지하는 권리. 시전 상인들에게 독점 판매권 및 난전 금지권을 주고 조정이 세수를 챙겼음
면신례 : 조선시대 관청에 배속된 신임 관원이 정식 구성원으로 인정받기 위해 치뤘던 통과의례
* 위 이야기는 2025 저작권 글 공모전을 위해 쓴 글로 역사적 사실과 다른 허구이오니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