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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의 Jun 07. 2024

아이돌이 밥 먹여준다!

강렬했던 덕질 이야기

“어휴, 아이돌이 밥 먹여주니?”

“콘서트를 한 번 갔으면 됐지 뭣 하러 똑같은 걸 세 번이나 봐! 표 값이 다 얼마야!”

“그거 할 시간에 공부나 좀 하고, 그 돈 있으면 부모님께 효도를 하지 그래?”


성인 여성이 아이돌을 좋아한다는 것은 으레 철없는 취미생활 정도로 인식되게 마련이다. 손에 닿지도 못할 신기루 같은 존재를 위해 시간과 돈과 애정과 노력을 쏟는 아이돌 팬들을 보며 혀를 끌끌 차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케이팝이 전 세계적으로 위용을 떨치기 시작하자 아이돌을 좋아하는 것에 대한 사회의 시선이 그나마 좀 나아지기는 했지만, 운동이나 독서 같은 다른 취미에 비해 비생산적이라는 인상이 확실히 짙다.


그럼에도 나는 한 때 어느 보이그룹에 깊게 빠져 아이돌 ‘덕질’을 했었고, 그 시절은 엄청난 열정을 불태우고 성취감을 맛봤던 내 인생의 퍼즐 한 조각이었다고 자부할 수 있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입꼬리가 슬며시 말려 올라가는 정말 행복하고 의미 있는 기억이다. 



나는 사실 타고난 덕후는 아니었다. 보통 많은 친구들이 TV 속 오빠들에게 마음을 뺏기고 마는 10대 시절에도 나는 혼자 무덤덤했다. 특히 마이너한 감성을 훈장처럼 여기던 중학생 때에는 남들과 조금이라도 다른 노래를 듣고 싶어서 일부러 남들이 모를 만한 노래를 골라서 들었다 보니, 남들이 다 좋다고 하는 아이돌 가수들에게는 큰 관심이 없었다. 

주위에 각 분야의 덕후들이 정말 많았는데 그에 비하면 내 취미와 취향은 한없이 얕아서 ‘나는 원래 뭔가에 깊게 빠지는 걸 잘 못하는 사람인가보다!’ 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 나의 인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은 한 사람이 내 앞에 등장했다. 그를 가칭 A라고 하겠다. A는 OO그룹 소속으로, 전국민이 다 알 정도로 유명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잘 생긴 외모 때문에 눈에 띄는 존재였다.

처음에는 OO그룹의 노래가 좋아서 듣기 시작했다. 나는 그 노래를 좋아하는 리스너일 뿐이지, 팬은 아니라며 ‘입덕 부정기’를 거쳤던 시기였다.

그러다 우연히 A가 나온 TV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화면 속의 그가 미소를 지으면 나도 모르게 내 얼굴에는 미소가 번졌다. 한참을 그렇게 웃고 있다가 문득 내 광대뼈와 근육 움직임을 자각하고 난 후, 나는 어쩔 수 없이 그의 팬이 되었음을 인정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가 속해 있는 그룹의 모든 프로그램들을 하나씩 찾아 보고, 공개 방송과 콘서트에 가고, 음원 순위를 위해 그들의 노래를 스트리밍하는 본격 덕후로 발전했다.
그들은 더 알면 알수록 괜찮은 사람들인 것 같았다. 무대에서는 눈을 뗄 수 없이 멋있고, 자체 콘텐츠나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는 소탈하고 솔직한 모습도 있었다.


나를 덕후의 세계로 인도한 A뿐만 아니라 한명 한명 다른 멤버들의 매력도 발견하게 되면서 그들에게 차츰 스며들었다. 심지어 내 하우스메이트와 동생 등 주위 사람들에게 OO그룹을 영업해 기어이 팬으로 끌어들이기도 했다.





나의 덕질이 다이내믹해졌던 전환점은 팬 커뮤니티와 SNS에서 내 디자인 작업물이 화제가 되어 칭찬을 많이 받았던 것이 그 시작이었다. 뿌듯한 와중에 ‘이 정도면 팔아도 되겠는데?’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고, 곧바로 OO그룹의 팬 커뮤니티에서 구매 의향을 묻는 글을 올렸다. 굿즈를 팔아 달라, 도와주겠다는 사람들이 어디선가 속속 나타나 얼떨결에 그 자리에서 주문 건과 계좌 관리, 고객 응대 등을 맡을 팀원들이 구해졌다. 상품 기획과 디자인, 업체 컨택, 생산, 홍보까지가 내 역할이 되었고, 그렇게 정신을 차려보니 공동구매를 주도하고 있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첫 공동구매부터 성공적이었다. 첫 번째 상품은 선주문 시작 3주만에 매출 1500만원을 돌파했다. 그 커뮤니티에서 이전에 다른 사람이 2달간 공동구매를 했던 상품의 매출이 100만원쯤이었던 것을 감안했을 때, 기대했던 것을 훨씬 뛰어넘는 금액이었다. 처음에 디자인 시안을 올려 수요조사를 했을 때부터 너무 예쁘다며 반응이 좋았는데, 꼼꼼하게 업체를 선정하고 퀄리티에 신경을 많이 썼더니 구매 고객들의 만족도도 정말 높았다. 2차 공구를 열어달라는 요청이 물밀듯이 밀려들어왔다. 소속사에서 만든 공식 굿즈가 아닌 비공식 팬메이드 굿즈이고, 팬덤 규모가 그다지 크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정말 놀라운 성과였다. 



그 후 다른 종류의 상품을 기획해 몇 번의 공구를 더 열었다. 여러 번 하다 보니 사람들이 어떤 것을 원하는지, 생산 업체는 어떻게 선정하고 어떻게 소통하는지에 대한 나름의 노하우가 생겼다. 점점 '믿고 사는 공구팀 상품' 이라는 입소문이 나서 일본과 베트남, 필리핀 등 해외 팬 커뮤니티에서도 구매 요청이 오기도 했다. 어찌어찌 번역기를 돌려 가며 해외 고객들을 대상으로도 많은 수익을 냈다. 거짓말 안 보태고 콘서트장에서 주위를 둘러보면 내가 판 물품들을 가지고 있는 팬들이 적지 않게 보일 정도였다. 내가 만들고 팔았지만 참 신기하고 뿌듯했다.



공동구매 기간이 다가오면 종종 구매를 독려하는 홍보글을 올리곤 했다. 친구와 함께 제품의 샘플 사진을 촬영하면서 우리끼리 장난으로 B급 감성의 웃긴 샘플 착용 사진과 영상을 같이 찍었다. 장난으로 찍었던 사진을 우리만 보기가 아까워 커뮤니티와 트위터에 올렸더니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글에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존웃ㅋㅋㅋㅋㅋㅋ’ 댓글이 쭉쭉 달리는 것을 보니 너무 신나고 재미있었다. 그 이후로 구매 독려 글에 밈을 패러디한 이미지를 올리고 여러 웃긴 드립을 치며 팬 커뮤니티를 누볐다. 나도, 내 친구도 생각보다 관종이었던지 계속 새로고침을 눌러 댓글을 확인하고 사람들의 반응을 즐기곤 했다. 그리고 그 글들이 나름 효과가 꽤 있어서 게시물을 하나하나씩 올릴 때마다 판매량 그래프가 치솟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짜릿함 때문에 일이 많아도 힘들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학교 생활과 아르바이트와 굿즈 판매를 병행하느라 눈 코 뜰 새 없이 바빴지만 일을 허투루 하지는 않았다. 상품 기획 단계에서는 디자인 시안을 선공개하고 반응을 지켜보며 수요를 꼼꼼하게 확인했다. 상품 소개 글이나 홍보 콘텐츠를 올릴 때에도 ‘어떤 내용’의 콘텐츠를, ‘어느 채널’에, ‘어느 시점’에 보여주는지에 따라 사람들의 반응이 달라지는 게 보이길래, 그 이후로 사람들이 뭘 좋아하는지 그 경향성을 파악하고 전략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시도를 조금씩 해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생산 현황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조금의 문제라도 생길 조짐이 보이면 바로바로 공유했다. 경험이 쌓여가면서 상품 기획부터 판매까지 많은 것들을 디테일하게 배울 수 있었다.



사실 굿즈가 아무리 잘 팔린다고 해도 그 돈이 내 주머니로 들어오는 건 아니었다. 수익금은 전액 팬덤에 기부해 팬 행사나 팝업 등에 활용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 개인이 금전적 이익을 얻은 건 아무것도 없었다. 기껏해야 사진 촬영용으로 뽑은 샘플 상품 몇 개를 받은 것 정도? 사랑의 힘과, 다른 팬들의 성원에서 오는 기쁨과 보람이 아니었다면 그 일을 지속하지 못했을 것 같다. 

뿐만 아니라 ‘내가 디자인하고 만든 상품이 사람들에게 팔리고, 심지어 잘 팔린다’ 라는 가능성을 확인한 것 자체에 큰 의미가 있었다. 훗날 창업이 꿈이었기 때문에 나중에 내 사업을 하게 됐을 때를 대비해 ‘사업 연습’을 한다고 생각하고 진심으로 임했다. 팬덤에 기여하는 동시에 내 사업 연습까지 하다니 일석이조 아닌가?



열심히 덕질을 하고 굿즈를 만들어 파는 나를 보며 “대단하다!”, “멋지다!” 같은 말을 해준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런다고 그 멤버들이 너를 만나주기라도 해? 네 돈 버는 일도 아닌데 왜 해?”, “네 앞가림도 못 하면서 연예인 쫓아다니는 데에 시간을 너무 많이 쓰는 거 아냐?” 라고 쓴소리를 했던 주위 사람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일이 주는 나름의 가치와 의미를 새기며 꿋꿋하게 지속해 나갔다. 무엇보다도 그냥 너무 재미있었다. 내가 파는 걸 사람들이 사 주는 게 가슴설레는 일이라는 걸 그 때 알았다.







그러던 중, 취업 준비 시즌이 되자 학교 곳곳에 여러 회사의 채용 설명회 부스가 세워졌다. 한 부스에 오랜만에 보는 친구가 앉아 있는 걸 보고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서로의 안부를 묻던 중 부스 옆에 서 있던 그 회사의 대표가 나에게 관심을 보였고, 조만간 커피 한 잔 하자며 약속을 잡았다. 


며칠 후 나는 대표와 카페에 앉아 나는 어떤 사람이고, 어떤 일들을 해왔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학 생활 동안 가장 성공적이었던 일이 뭐냐고 묻자,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큰 돈을 벌어본 활동이 있었는데요..” 하면서 아이돌 굿즈 판매 이야기를 시작했다.
말을 하다 보니 나도 너무 신나서 한참을 떠들었던 것 같다. 그는 내 이야기에 굉장히 감명을 받은 것처럼 보였고, 급기야 그 자리에서 나에게 스카우트 제의를 했다. 


처음에는 대표의 제안을 고사했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 이후에도 나를 잊을 만 하면 불러내 끈질기게 설득했고, 그렇게 네 번을 더 만났다. 여러 이야기들을 듣고 좀더 고민해 보니, 앞으로 잘 될 것 같고 성장성 있는 회사라는 생각도 들었고 일도 재미있을 것 같았다. 결국 대학교 마지막 기말고사를 일주일 앞둔 어느 날, 나는 그 회사에 입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결과적으로 덕질은 나에게 ‘밥을 먹여’ 주었다. 아무 목적성 없이, 그저 즐거워서 했던 일이었다.
하지만 팬 활동을 하며 나 스스로가 가진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찾았고, 그 덕분에 하게 되었던 여러 경험들은 나에게 엄청난 자기효능감과 자신감을 안겨 주었다. 나조차도 모르고 있었던 나의 가능성을 찾고 열정을 발휘할 수 있게 해준 OO그룹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항상 마음 속으로 그들의 앞날을 응원하고 있다. 





이 글은 주거취약계층을 위한 매거진 <빅이슈>의 322호에 실렸던 글의 원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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