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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의 Jun 08. 2024

부족함을 채우는 삶

나는 더 잘될 수 있었을까?


 

새들을 부러워하는 토끼가 있었다. 토끼는 새들처럼 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포식자들을 더 잘 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토끼에게는 빨리 달리는 재주가 있었지만, 하늘을 날고 싶다며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결국 토끼는 나는 연습을 하던 중 떨어져 다리를 다쳤고, 민첩성이라는 본인 고유의 장점마저 잃게 되었다고 한다.

 



내 친구의 블로그에서 우연히 보게 된 이 우화는 나에게 깊은 여운을 남겼다. 이 이야기에 그렇게 강한 인상을 받았던 이유는 마음 한 구석이 찔렸기 때문이다. 곱씹어 볼 수록 토끼의 모습이 곧 내 모습 같았다. 


이상하게도 나는 내 장점보다는 단점에 집중하고, 나의 부족한 점들을 채우려고 욕심을 내는 경향이 있다. 지금까지 살아온 과정을 되돌아보면 내가 잘 하는 것을 더 잘하려고 하기보다는, 어떤 이유에서든 잘 못 하거나 안 해본 일들을 어떻게든 해내려고 발버둥쳐 왔다.

 





예를 들어 대학 입시도 마찬가지였다. 난 초등학교 때부터 내가 미술에 감각과 재능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패션 관련 분야로 나가고 싶다는 이유로 미대 입시를 시작했다. 미술학원에서는 내가 그림을 제일 못 그리는 축에 들었다. 기본적으로 엉성하고 투박한 그림 실력에, 손이 유독 느린 나로서는 주어진 시간 내에 그림을 완성시키는 경우가 드물었다. 매일 수업 마지막에 모두가 그린 그림을 바닥에 깔아놓고 평가를 하는데, 내 그림을 보고 있자면 가끔은 비참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그 당시에는 시간 내에 그림을 그리는 재능과 패션 디자인의 재능은 별개일 거라고 생각했고, 대학에 가기만 한다면 나는 잘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정신승리를 하며 입시 기간을 버텼다. 

수시는 전부 떨어졌고, 정시는 그나마 나에게 유리한 전형이 있었던 곳 딱 한 군데 붙었다. 물론 가고 싶었던 곳이어서 만족하며 다녔긴 했다.

 


미대에 입학하고 1년 반 후, 결국 전공이 나와 안 맞는다는 현실을 직시하고 전과를 준비했다. 입시 레벨까지는 노력으로 승부할 수 있는 영역이지만, 그 이후의 영역은 재능과 흥미(+그로 인해 생기는 끈기, 어쩌면 운까지도)가 훨씬 중요한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미대를 떠나 어디로 갈지 이리저리 탐색하다가, 배워 두면 나중에 도움이 될 것 같다며 공대에 갔다. 고등학교 때 미대 입시를 한답시고 수학을 반쯤 놓았기 때문에 가서 잘할 자신은 없었지만 일단 조금이라도 공부를 해보고 싶었다.


 수업 내용을 100% 다 소화하지 못했고, 학교에서 시험을 보면 반은 못 풀었지만 겨우 수업을 따라가며 어찌어찌 졸업을 했는데, 결론적으로는 공학적 지식을 거의 사용할 일 없는 직무로 취업을 했다.



그 외에도 첫 직장에서의 정규직 직장생활 3년을 뒤로 하고 새로운 일을 배우겠다며 다른 회사의 인턴으로 들어가기도 했다가, 회사가 갑자기 어려워지면서 정규직 전환이 안 돼서 별 수 없이 또 이직을 했던 적도 있다.

직무와 전혀 상관이 없고 이력서에도 못 올리는데 그냥 해보고 싶었던 분야의 자격증들을 취미 삼아 이것저것 도전해 보기도 했다.

 







..글로 적어놓고서 다시 읽어 보니 저게 남 얘기였다면 ‘쟤는 왜 저렇게 허무한 노력을 하며 살았지?’ 라는 생각이 들었을 것 같다. 실제로 나에게 너는 충분히 더 잘될 수 있을 것 같은데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하지 않겠냐며, 이도저도 아닌 사람이 되는 것이 두렵지 않냐며 조언을 했던 주위 사람들도 있었다. 

나로서도 그들의 말에 반박하기가 어려웠다. 누가 봐도 나에게 불리한 선택을 해 오면서 나는 뭘 원했던 걸까?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에 대해 욕심을 내지 말고, 그냥 잘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서 그걸 더 잘 하려는 노력을 하면 된다. 굳이 힘든 길을 선택해 부족한 나 자신을 직면해야 하는 고통을 추구해야만 했을까?

 


본인의 부족한 점을 채우면서 사는 삶과 잘 하는 것을 더욱 발전시키는 삶 중에서, 성장 속도와 들이는 노력의 효율을 따져 보면 장점을 부각시키는 방향이 훨씬 더 나을 것이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능력을 인정받기도 쉽고, 더 적은 노력으로 더 쉽게 자기의 능력치를 끌어올릴 수 있다. 세상의 많은 성공한 사람들 역시, 당신이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그 일에 집중하라고 말한다. 인생살이에는 정답이 없다지만, 잘 하는 걸 찾아서 한 우물을 파야 한다는 것은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성공 방정식 중 하나일 것이다.

 


일부러 ‘못하는 걸 해야지!’ 하고 삶의 방향을 정하고 살아온 건 아니었다. 대단한 부귀영화를 누리겠다, 또는 결점 없이 완벽한 인간이 되겠다는 의도를 가지고서 나의 단점을 찾고 부족함을 메웠던 것도 아니었다. 문득 되돌아보니 못 하는 걸 더 시도해보는 쪽으로 사고의 메커니즘이 작동해 왔던 것을 알아차렸을 뿐이다.

 


그렇다면 이 메커니즘대로의 행동 양식을 통해 내가 얻은 건 무엇이었을까? ‘열심히 노력했네’, 아니면 ‘~까지도 해봤다’ 라는 몇몇 주위 사람들 사이에서나 칭찬받을 수 있는 단순한 허울 정도일 것 같다. 성과 없는 성취감에 취하는 것조차 민망할 정도로 실질적이고 객관적인 효익은 딱히 없었다.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자 하는 욕구’의 근원을 찾으려고 해 보니 여러 가설이 나왔다. 일단 특출나게 잘 하는 것이 없어서인 것은 명확하다. 그 외에는, 단순히 ‘모르는 것을 더 알고 싶다’라는 호기심에서 출발한 순수한 욕망일 수도 있다. 아니면 내가 무언가를 못 한다는 사실을 내 알량한 인정 욕구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서일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남들보다 못하는 것에 대한 열등감의 발로일 것이다. 

어쩌면 이렇게 살아온 삶이 나름 살 만 해서였을 수도 있다. 노력을 안 한 것은 아니니까 어떻게든 뭐라도 되긴 되었던 적이 꽤 있다. 힘들었지만 어쨌든 대학에도 갔고, 졸업도 했다.



 

불리할 수 있는 선택들을 하며 살아온 삶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다양한 것들을 해보다 보니 삶의 경험이 풍성해졌다. 그래서 사는 게 꽤 재미있었다. 정말 안될 것 같았던 일을 되게 만들고 한계를 돌파하는 데에 은은한 희열도 느꼈다. 한 분야에서 대성하지는 못했지만, 그럭저럭 잘 하는 것들도 많아졌고 아예 못하던 걸 최소한 할 수는 있게 만들어 주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스스로를 돌아보고 나의 부족한 점을 찾아 뭔가를 새로 시도하고 배우려는 삶의 태도를 가지는 데에 도움이 되기도 했다.

 




다만 만 5년차 사회인으로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한 지금은, 기존의 사고 회로를 답습하는 것이 맞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든다. 배움 그 자체가 의무였고, 젊음이라는 이름으로 시행착오가 허용되었던 예전에는 괜찮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좋은 경험했다, 새로운 배움을 얻었다’는 사실 그 자체로 만족하고 합리화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것 같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것과 가지고 있는 것들을 활용해 앞으로의 내가 이 사회에 무엇을 기여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방향성을 다시 설정해봐야 할 때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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