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살고 싶은 사람의 본능

나는 살아야 해요.

by 활발한골방지기

남편은 나보다 살림을 잘한다. 정확히 말하면 요리를 잘한다. 어렸을 때부터 먹성이 좋았고,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셔서 누나와 둘이서 배가 고프면 손수 해 먹었던 터라 평생 안 해본 나와는 달리 부엌에서 만큼은 손도 재빠르고 센스도 넘쳐났다.


그 외에 청소, 정돈 등 세부적으로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은 모두 내 담당이다. 힘을 써야 한다거나 혼자 하기 힘든 것들은 남편을 소환해야 하지만 그 외에 것들은 전부 혼자 힘으로 하고 있다.


남편도 나도 서로가 잘하는 것을 하자며 동의하에 이루어진 룰이었고, 남편은 내가 부엌에서 음식을 하는 걸 못마땅해하고 나는 남편이 청소하는 것을 못마땅해한다. (남편은 재료가 아깝다며 부엌 근처는 얼씬도 말라하고 저는 왜 이런 청소도 깔끔하게 못하냐고 투닥대던 터라 웃으며 서로 평화적으로다가 합의한 결과물이랍니다.)


그렇게 우리는 늘 우리 나름대로 잘 지내고 있다. 아니, 나와 남편은 사는 데에 있어서 서로 양보할 것은 양보하며 맞춰서 살고 있었다.


문제는 결혼이라는 것이 '부부'만의 세계로 끝나는 게 아니라는 것이었다.


잊을만하면 내 식구들 얘기를 꺼내며 돈 잘 버는 시누와 비교하며 결혼도 안 한 언니는 도대체 언제 결혼하냐며, 그러다 혼자 사는 거 아니냐며, 언제까지 독립 안 하고 살건지 걱정이라며 비아냥을 거렸고 집에서 엄마가 이런 것도 안 알려줬냐는 말을 돌리고 돌려 말하는 고수 중에 고수인 시모가 있었다.


가족들을 건드리는 말들은 나의 분노를 끓어오르게 했고, 결코 지워지지 않는 상처로 남아있게 되었다. 반박하고 싶어도 말이 길어질수록 머리만 아파지는 상대이기에 나는 입을 다물고 귀를 닫았다.


덕분에 산후우울증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남편과는 사이가 좋다가도 시댁에 다녀오고 나면 늘 나는 밤송이처럼 언행이 모두 가시투성이로 변해 남편과 다투는 일이 잦았다.


해서는 안될 말도 해 가며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게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지 알고는 있지만 왜 화가 치미는 순간에는 알고 있는 걸 잊게 되는지 알 수가 없다.

더군다나 싸운 후에는 꼭 내 삶에 대한, 엄마가 된 나에 대한 후회와 좌절감이 넘쳐흘렀고 나의 자존감도 동시에 바닥이 나기 시작했다.


나는 사실 산후우울증이 있는지도 몰랐다. 불안이 있는지도 몰랐다. 그저 그냥 이렇게 사는가 보다 싶으며 살아갔다. 그냥 어느 날 빛이 안 들어오는 5층 빌라였던 당시의 집에서 건너 빌라 사이로 비치던 햇살을 보고 '와, 죽고 싶다.'라고 생각을 했다. 이 생각이 얼마나 무서운 징조였는지조차 나는 알아채지 못했다.


잠이 든 것 같았다.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리는 것 같아 눈을 떴는데 아이를 안고 나는 서 있었다.

나의 볼은 눈물로 덮여있었고, 맨발이었다. 가슴은 젖이 불어 옷이 다 젖어있었고, 내 품에는 아이가 있었다. 그런 상태로 나는 옥상 위에 올라서 있었다.


나는 '죽음'을 코앞에 마주하고 나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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