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발 직전
추석과 김장 시기가 지났을까.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시댁에 가니 나는 추석도 김장도 참석하지 않은 콧대 높은 며느리로 구분되어 있었다.
친척들을 모아두고 내 욕을 얼마나 했을지는 가늠하기 힘들고 안 했을 수도 있겠지만 시모는 동네 사람들 뒷얘기를 옮기고 다니다가 동네에서 큰 싸움이 난 전적이 있어 안 했으리는 만무 하다. 하지만 이래도 욕, 저래도 욕받이인 나는 그냥 그러려니 하며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그렇게 나름대로 큰 행사가 지난 어느 날 밤. 시모에게 전화가 왔다. 잔뜩 성이 나있었다.
"네! 어머니!"
"너, 집이니?"
"네, 집이에요."
"집에 뭐 과일 있니?"
"네? 과일이요?"
"있어, 없어? 빨리 말해. 나 지금 너네 집 앞 슈퍼니까."
"네?! 집 앞이요? 갑자기 어쩐 일로..."
"빨리 말해! 네가 말 안 하면 내가 알아서 사갈게."
말이 끝난 직후 일방적인 통화종료로 나는 당황했고, 1,2초 멈추어 있다가 남편에게 비상이라고 집을 얼른 청소했다.
나와 남편은 부랴부랴 집을 정돈하고 시모 맞이를 준비했다.
시모는 씩씩대며 올라왔고, 이 한밤중에 집에 혼자서 씩씩대며 온 이유가 너무나도 궁금했다.
나는 양쪽에 팔목 보호대를 끼고 누추한 차림으로 시모를 맞이하니 조금 난처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정성을 다해 대접하고 싶었다. 아니, 정성을 다해 맞춰주고 싶었다.
이번에는 또 어떤 일로 화가 났을까, 왜 하필 이 시간에 우리 집에 왔을까. 등 머릿속이 복잡했다.
남편도 덩달아 긴장하고 있었다.
결국 추석날과 김장을 할 때 내가 안부 전화를 안 해서 화가 났던 게 이유였다.
내심 며느리가 와서 돕길 바랐지만 출산한 지 얼마 안 된 며느리를 부리다가는 나쁜 시모가 될게 뻔하니 인자한 시모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참았지만 결국 분에 못 이겨 쫓아왔던 것이었다.
"전화 못 드린 것에 대한 것은 정말 죄송해요.
하지만 정말 아파서 병원에 치료를 다녔고, 아이들도 감기라 정신이 없었어요.
이제야 쉬는 건데 전화 못 드린 건 정말 죄송해요.“
나는 계속해서 시모의 분을 풀어주려 노력했다. 제발 애들도 있는데 조용히 넘어갔으면 좋겠어서였다.
시모는 난처한 얼굴로 "내가 못 참아서 이런 사달이 났네, 내가 미안해. 이 밤중에 찾아오고. 네가 일부러 그럴 애가 아닌데 내가 잘못 왔네."
아니라며 시모를 다독였다. 계속해서 어머니 마음 이해한다며 고개를 조아렸다. 그래도 어른이 화가 난 상태인지라 어린 내가 숙여야겠지-하는 마음이 컸다.
그렇게 시모는 내 눈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한 채 폭풍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사라졌다.
나는 언제나 시모의 성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당시 70세에 가까워지는 나이였지만 자신이 젊었을 때는 조폭의 뺨을 때린 여자라며 영웅담을 해댔고, 싸움이 일어나면 자신이 있어야 한다, 자신이 못 이기는 사람은 없는 양 스스로를 대견스러워하는 그런 '어른'이었다. (얼마나 성숙됐느냐를 떠나서 나보다는 나이가 많기에 어른이라 칭하고 싶다.)
늘 급하고 단면만 보고 상황을 판단하고 자신이 틀리다고 말하는 사람은 나중이 되서라도 꼭 되갚아 주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늘 단점만 있는 것도 아니다. 활발하고 시원시원하게 일을 해결하려는 모습은 본받고 싶다고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하지만 한 가지 정확한 것은 나와는 결이 다른 사람이라는 것이다.
가장 싫었던 점은 앞에서는 웃고는 뒤에 가서 욕을 하는 모습과 모르는 사람을 손가락질하며 겉모습을 지적하는 모습이었다.
'저 여자는 저렇게 뚱뚱한데 치마 짧은 거 입는 거 봐봐. 저 코끼리 같은 다리를 어휴'라며 대놓고 손가락으로 가리켰고 옆에 있는 나는 회피하며 얼굴을 붉혔다. 창피했기 때문이다. 살면서 그렇게 다른 사람의 외모를 평가하고 손가락으로 사람을 가리키는 행동은 본적도 들은 적도 없었다.
하지만 남편도 똑같이 하는 모습을 보고 정말 예의 없다며 지적하여 이제 남편은 하지 않는다.
이런저런 모든 모습들이 나와는 맞지 않아서 적응하기가 참 힘들었다.
산후우울증을 점차 이겨내고 시모에게 받은 마음의 상처는 아물지는 않았지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최대한 상처로 남기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노력했다.
그렇게 점점 이질감을 느끼던 찰나에 아주 사소한 사건 때문에 나는 결국 터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