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그만할래.
한 날은 시모와 남편이 싸웠다.
의견이 맞지 않다는 이유로. 시누네 둘째가 인사도 안 하고 방 안에 있었는데 남편은 인사도 안 하냐며 뭐라 했고, 시모는 내버려 두라며 실랑이를 벌였다.
남편은 오냐오냐하니 버릇이 없다고 했고, 시모는 어쩐 일인지 더 크게 화를 냈다.
분명 우리가 모르는 속상한 일이 있었으리라 짐작하지만 남편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잔소리를 했다.
갑자기 시모는 쟁반에 담은 국그릇들을 싱크대에 던져 버렸고 집에 가라고 했다.
남편은 나와 아이만 두고 뛰쳐나가 버렸다. 시모는 나에게 너도 가라며 소리를 질렀고, 시아버지는 그냥 있으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겁에 질린 아이를 안고 남편을 따라갔다.
나를 두고 간 남편도 미웠고, 아무리 화가 났어도 며느리 앞에서 그렇게 물건을 집어던지는 시모의 행동이 도를 넘었다고 생각했다.
둘 사이가 또다시 틀어져서 나는 하는 수 없이 시누에게 연락했다.
자초지종 설명하고 가서 시모를 달래라며 부탁했다. 시누는 미안하다며 사과했다.
다음 날, 시모가 나에게 전화를 해 화를 퍼부었다.
이유는 내가 시누에게 남편과 자신이 싸운 내용을 얘기했다는 것이었다.
"너! 너도 우리 집에 오지 마! 오기만 해 봐! 찬물을 확 끼얹어 버릴 테니까! 애 데리고 오지도 마! 애 오면 애한테도 찬물 끼얹어 버릴 거야!"
씩씩대는 시모에게 나는 대꾸하지 않고 듣고 있었다.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시모는 말을 이었다.
"나, 너네 식구들 안 봐도 상관없는데, 내 딸네 식구는 봐야 되는 사람이야. 그러니까 눈에 띄면서 사람 열받게 할 거면 너네 연락하지 마. 찾아오지도 마! 니들끼리 살아!"
이 날도 시모의 화풀이 상대는 나였던 것 같다.
충격적인 말이었지만 이제는 너무나도 익숙한 시모의 언행이었기에 크게 상처는 받지 않았다.
시모는 늘 이런 식이 었다.
더군다나 이번에도 남편은 그런 시모의 행동과 나의 감정을 방관자로서 지켜보고 넘기기만 했다.
나는 이번에 확실히 알았다.
시모의 비상식적인 언행에 내가 익숙해지고 있다는 것을.
잘못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두 딸이 감기로, 중이염으로 장염으로 몇 달을 약을 달고 살았던 때가 있었다. 힘들어도 가정보육을 했고 감기가 다 나을 때까지 물심양면 정성을 다해 마침내 약으로부터 자유로워졌었다.
때마침 시댁에서 불렀다. 시누는 맞벌이로 아이들을 시모가 도맡아 키웠는데 늘 시댁에 가면 시누의 아이들이 있었다.
아이들은 감기에 다시 걸릴 수도 있지만 그때당시 다시 감기에 걸리면 힘들게 끊은 약을 다시 먹일 수도 있다는 생각 자체만으로도 너무 힘들었었다.
때문에 감기가 유행인 시기이기도 한 그때 나는 한창 예민해져 있었고 시댁에 가야 하는 상황인지라 남편에게 말했다.
"시누네 애들은 감기에 안 걸렸대? 나 이번에 애들 또 감기 걸리면 너무 힘들 것 같아. 어차피 감기는 또 걸리겠지만 당분간은 내가 가정보육하면서라도 약 좀 그만 먹이고 싶어. 내가 지금 지쳐서 그래."
"전화해 볼게."
아니나 다를까 시누네 아이들이 감기에 걸렸다고 한다. 가고 싶지 않았다. 정말이지 그 어느 때보다도 간절했다.
남편은 시모에게 애들 감기가 이제 다 나았는데 시누네 애들이 있으면 좀 그렇다고 말했고, 시모도 적극 찬성했다. 너무도 어린 두 아이였기에 시모도 약을 먹이는 게 석연치 않았을 것이다.
"누나네 다 집에 갔어. 걱정하지 말고 와. 엄마 아빠랑 너네 식구끼리만 밥 먹게."라며 안심시켰고, 우리는 시모를 철석같이 믿고 갔다.
쿵.
심장이 내려앉았다.
시댁에는 본인 집에 갔다던 시누네 가족들이 단란하게 거실 한쪽을 차지하고 있었다.
반갑지도 않았지만 무엇보다 시모의 거짓말에 너무 화가 났다.
현관에서 남편을 노려보았다.
남편은 난처해했지만 일단 들어가자며 먼저 집 안으로 들어갔다.
아무리 그 상황이 불쾌하고 견디기 힘들었어도 이미 와 있는 사람들더러 나가라고 하기도, 발길을 돌려 집으로 가기도 뭐 한 그런 난감한 상황이었기에 애써 웃으며 인사하고 들어갔다.
시모는 부엌으로 들어간 나에게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내가 들리는 동선 내에 남편을 붙잡고 얘기했다.
"어쩌니, 오겠다고 하는데 오지 말라고 할 수도 없고. 감기 옮을까 봐 오지 말라 하는 것도 웃기잖아. 안 그래?"
남편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그저 묵묵히 자리를 지켰다.
그날, 내가 밥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너무 화가 나 있었고, 쌓여 왔던 모든 감정들이 들고일어나서 울렁거렸다.
집에 가는 내내 한 마디도 하지 않았고, 남편은 계속해서 눈치를 보다가 "엄마가 좀 너무했지?"라며 말을 붙였지만 나는 남편의 말을 자르며 "조용히 하고 가자."라고 대화를 종료시켰다.
집에 들어가서 아이들을 씻기고 재우는 그사이, 우리는 대화를 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자는 것을 확인하고 나는 거실로 나와 노트북을 켜서 합의 이혼 절차와 변호사 상담을 알아보았다.
다 필요 없고 양육권만 가지고 오고 싶은 마음이었다. 명확한 목표 덕인지 정말 빠른 시간에 많은 정보들을 머릿속에 넣었다.
남편을 불렀다. 혹여나 큰 소리가 오갈까 봐 아이들이 자고 있는 방과 떨어져 있는 드레스룸으로 들어갔다.
서로 마주 보고 앉았고 남편은 불안해서 안절부절.
나는 아직 사랑하는 남편을 향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를 놓아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