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제안, 남편의 결심
남편은 무슨 소리냐며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돈 다 필요 없어. 그냥 애들이 아직 어리니 엄마가 키워야 하는 게 맞는 것 같아. 양육권만 줘. 그렇게 협의 이혼하자. 솔직히 애들 당신이 데리고 있는다 한들 당신 어머니가 키워야 하는데 몸도 안 좋으시고 이미 시누네 애들도 데리고 계신데 가능하기나 하겠어? 현실적으로 내가 키우는 게 맞는 건 당신도 알잖아."
남편의 눈동자는 흔들렸다. 얼굴이 붉어지며 당황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뭐야? 왜 그래?"라고 말했다. 목소리가 떨렸다.
"왜냐고? 정말 몰라서 그래? 아니면 이번에도 모르는 척하는 거야?"
"화가 난 게 있으면 대화로 풀지 이게 뭐 하는 짓이야?"
남편은 화를 냈다. 보통 같으면 화를 내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 마음을 이해한다. 날벼락을 맞은 기분이었고 부정하고 싶은 말이었을 것이다.
나는 2년을 시모에게 시달렸다.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고작 2년이다. 하지만 나는 그 2년 동안 수도 없이 울고 남편과 싸우며 매번 눈치를 보고 시모가 화를 내는 날에는 자존심도 자존감도 구겨가며 비위를 맞췄었다. 이제는 그렇게 나를 무시하고 배려하지 않는 시모를 보고 싶지 않았다.
"내가 당신 어머니 때문에 혼인신고 한 날부터 지금까지 힘든 건 알고 있지?"
"설마 그거 때문인 거야?"
"응. 그거 때문이야."
"하... 남들 다 그렇게 살기도 해.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남편도 아차 싶은 대사였으리라.
화가 나서 뱉은 말이기에 나는 충분히 이해하고 넘겼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말을 이었다.
"나는 남들 사는 대로 살고 싶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산다고 해서 그게 내 인생에 기준은 되지 못해."
"절대 안 돼."
남편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단호하게 안된다고 말했다.
나는 남편의 뒤통수에 덧붙였다.
"생각해 봐."
대답 없이 남편은 방을 나갔다.
나는 그날 이후부터 매일 남편이 퇴근하고 현관을 열 때 문 앞에서 기다렸다가 질문을 던졌다.
"생각해 봤어?"
남편이 출근하면 변호사 사무실에 전화를 해서 상담을 했고, 판례를 찾아보기도 했다.
물론 흔들리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남편을 사랑했고, 가정을 깨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내 본능과 직감은 당장 이 사람과 헤어지는 게 맞다고 세포 하나하나가 알려주고 있기에 마음을 다잡았다.
매일을 같은 질문을 하는 아내를 보니 남편은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일임을 인지했던 것일까, 드디어 입을 열었다.
"내가 잘못했어. 내가 어머니 몫까지 더 잘할게."
남편을 다독여주고 싶지만 그렇게 되면 남편은 더 매달릴 것이다.
나는 결심을 했고, 더 이상의 여지를 주면 안 됐었다.
"당신도 알잖아. 내가 얼마나 힘들었고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 하지만 있잖아, 나는 이제 내 인생에서 당신 어머니를 끊어내고 싶어. 근데 그러려면 내가 당신을 끊어야겠더라고."
남편은 말이 없었다.
"당신 어머니를 안 끊으면 내 숨이 끊어질 것 같아. 부탁이야... 정말 부탁할게."
남편은 결국 눈물을 터트렸다.
피붙이인 자신도 어머니 때문에 힘든데 아내는 오죽할까-라는 생각을 했었지만 적당히 넘어가는 것 같은 분위기면 아내의 감정은 뒤로한 채 '오늘도 넘겼다'라며 안심을 했었다고 한다.
충분히 이해한다. 시모는 미우나 좋으나 남편에게는 천륜이었다.
하지만 그건 그들의 사정이었기 때문에 이해는 하지만 나에게는 적용할 순 없다고 남편에게 말했다.
남편은 무릎을 꿇으며 나를 붙잡았다. 울지 않는 사람인데 눈물을 흘렸고, 자존심도 센 사람인데 무릎도 꿇었다.
안타까운 마음이 컸지만 돌이킬 수 없었다.
"자꾸 이러면 소송해야 돼."
다정했지만 단호한 말투로 선을 그었다.
남편의 눈동자는 슬픔과 원망이 섞여 있었다.
"나, 당신이랑 애들 안 보면 나 죽어. 제발..."
갑자기 나도 눈물이 흘렀다. 우리는 둘이서 마주 앉아 울었다. 하지만 나의 결심은 변하지 않았다.
"미안해. 하지만 난 이제 하루라도 이런 식으로는 못 살아. 나도 마음이 너무 아파. 하지만...
당신한테는 정말 많이 미안해. "
남편은 더 이상 말이 없었고 눈물만 흘렸다.
나는 그런 남편을 뒤로하고 아이들 옆에 누워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다음 날, 남편은 퇴근이 조금 늦을 것 같다며 저녁을 먼저 먹으라고 했다. 나는 알았다고 하며 아이들과 저녁을 먼저 먹었다.
'띠띠띠----'
생각보다 늦지 않은 시간에 남편이 귀가를 했고, 나보고 앉아보라고 한다.
어리둥절한 내 표정을 보고서 남편은 결심에 가득 찬 눈빛을 하고 입을 열었다.
"앞으로 우리 집에 안 가도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