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종료일까, 시작일까.

정답은 어디 있는 걸까요.

by 활발한골방지기


사실 '안 가도' 된다는 말이 그렇게 반가울 수는 없었다. 항상 나를 불안에 떨게 만들었던 시모가 있는 시댁을 안 가도 된다니, 이만큼 황홀한 말이 어디 있을까. 입꼬리가 씰룩댔지만 지금 그게 포인트가 아니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사실 늦게 퇴근한 거 아니야. 일 조금 일찍 끝내고 어머니 집에 갔다 왔어."


남편의 말을 듣는 순간 불안함이 밀려왔다. 이 불안함은 분명히 2년간 훈련된 '불안'이었으리라.

불안 뒤에 곧바로 생각이 들었다. '아, 싸웠구나.'


남편은 이어 말했다.

"어머니하고 잘 얘기하려고 했는데 그게 안 됐어. 결국 나도 못 참았고 각자 연락하고 살지 말자고 했어. 더 이상은 대화 불가능이야."


상황은 자세히 말하지 않아도 시모의 분노가 불 보듯 뻔하게 내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래서 그냥 그러고 나왔어?"

"응."

"그래도 당신 어머니야. 이러면 내가 더 욕먹어. 연락 안 한다고 해도 어떻게 죽을 때까지 연락 안 할 수 있어?"

"나는 당신이 먼저야. 연락이야 나중에 할 수 있겠지. 근데 지금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뿐이야. 당신과 어머니를 막아 놓는 거."

"내가 최선의 방법을 제시했잖아."

"그건 죽어도 안돼. 싫어. 나 당신 없으면 못 살아."


남편의 대답은 내 입을 꾹 닫게 했고, 내 눈은 불안하게 흔들렸다.


한숨 섞인 날숨과 걱정스러운 표정을 한 남편을 나는 어찌해야 할까.

본인의 집과 싸워서 온 사람을 내쳐야 할까, 그런 남편의 행동을 보고 감동을 해서 모든 것을 용서해야 할까?

갑자기 가슴이 답답하게 죄어오기 시작했다.


한편으로는 남편이 참 이기적이게 보이다가도 나 또한 이기적인 모습이 있기에 감히 질타를 하지 못하는 입장이었다.



며칠 뒤 남편의 핸드폰이 울렸다. 시누였다. 남편은 갑자기 일어나더니 아예 집 밖으로 나갔다.

한참을 들어오지 않다가 마침내 현관문이 열렸다.


걱정이 되어 물었다.


"형님이야?"

"응."

"뭐래?"

"그냥~ 그때 얘기지 뭐. 신경 쓰지 마."


남편은 끝까지 괜찮다며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다 할거고 전부 막을 거라고 했다.

정말이지 그날 이후 시댁은 나에게 연락을 하거나 집으로 찾아오지 않았다.


시누는 엄마 같은, 우리 같은 시댁이 어디있냐며 미친놈이라며 남편에게 욕을 했다고 한다.

당연한거라 생각한다.


결국 나는 남동생과 아들을 휘어잡아 낚아채간 천하의 나쁜 년으로 인식되어 있을 것이다.

하도 시모에게 당한터라 이 정도는 타격감 자체가 없었다. 하지만 엄마와 누나의 입장에서는 크나큰 상처와 배신감이 턱 밑까지 차 올라왔으리라 짐작만 할 뿐이다.


어느 날은 남편이 주저하며 나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있잖아. 아버지가..."

"아버님이 왜?"

"만나지는 못해도 전화통화는 했으면 하시던데..."

말 끝이 흐려지더니 이내 결심한 표정으로 남편은 말을 이었다.

"아버지가, 며느리가 오죽하면 그랬겠냐고, 결국 어머니 성격 때문에 이 사달이 날 줄 알았다며 엄청 화내셨대. 다 이해하니까.. 그러니까..가끔 통화만 하자고 그러시더라고..."


나는 사실 흔들렸고, 안부정도야 주고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연락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게 맞다고 생각했다.


남편은 아마 섭섭하게 생각했겠지만 나에게 이러니 저러니 구태여 말하지 않았다.



결국 나는 남편과 가정을 지키고 시댁과 단절하는 것으로 상황을 종료시켜다.

아이들에게는 아빠가 있어야 했고, 가정을 깨기 싫은 게 가장 큰 우선순위였다. 더군다나 남편의 노력을 못 본 척하기에는 마음이 계속 갔기 때문이다.


문제는 시댁과 남편의 관계였다. 신경을 안 쓸래야 안 쓸 수가 없다.

아무리 그래도 친엄마와 연락을 안 하고 산다는 게 사실 내 입장에서는 굉장히 힘든 선택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남편은 마음이 여전히 아플 것이며 계속해서 가족들을 그리워할 것이라는 것이라는 거다.


내가 살기 위해 한 제안이 결국 나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화살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하지만 후회는 하지 않는다.








이전 10화10. 앞으로는 안 가도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