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슬 게이지가 차오른다.
중간중간 포기할 뻔한 나의 계획은 아이와 남편이 잡고 있도록 해 주었고 100%는 아니지만 60% 정도는 좋아지고 있었다.
그날 있었던 일은 나에게 너무나도 충격적이었고 '엄마'가 된 입장에서 죄책감은 씻어지지가 않았다. 때문에 남편에게 말을 하지 않으려 했지만 또다시 시댁에 관여해서 싸울 때 얘기를 했고 남편은 온 힘을 다해 돕겠다고 했다.
시모는 종종 아팠다. 골다공증과 어지럼증 그리고 척추질병(디스크), 무지외반증 등 골고루 여성이 가지게 되는 특유 질병을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아픔이 몰려오는 시기에는 늘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어서 온 가족들이 신경을 씀과 동시에 눈치도 보기도 했고 아픈 시모를 늘 걱정하고 있었다.
어느 날은 항상 내 편을 들어주던 시아버지는 내게 말했다.
"너희 엄마(시모)가 저렇게 매번 아픈 거 보면 마음이 참 안 좋아. 그런데 난 언젠가 너네랑 같이 살고 싶은 마음이 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
시모가 아플 때 병간호를 해 줄 사람이 필요한데 그게 나라는 말로 들렸다.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남편은 그 소리를 듣더니 내 눈치를 봤다.
정말 다행이게도 둘째는 첫째와는 다르게 신생아 때부터 쭈욱 통잠을 자 주었고 새벽수유도, 잠투정도 하지 않는 천사 같은 아이였다.
둘째 출산을 하고 50일 언저리 정도 됐을까, 나의 손은 습진과 산후풍으로 인해 손으로 하는 모든 일이 힘에 겨웠던 적이 있었다. 때문에 설거지나 아이 목욕 같은 경우는 남편이 퇴근 후 도맡아 했었다.
나름 며느리 노릇한다고 시모에게 김장 언제 하시냐, 몸도 안 좋으신데 돕겠다 했었다.
하지만 시모는 애 낳은 지 100일도 안 됐는데 김장했다가는 뼈 아파서 큰일 난다며 절대 오지 말고 김장하는 시간이나 날짜를 알려주지 않을 것이라며 신신당부했었다.
나름대로 늘 나쁜 점만 있는 건 아니었던지라 평소에 서로 조심만 한다면 평범한 고부관계로 지내기는 안성맞춤이었다.
아이들이 보고 싶다며 저녁을 같이 먹기로 하고 시댁에 갔다. 밥을 다 먹고 설거지 타임이 왔다. 시부모님은 아이들과 놀아주느라 정신이 없던 터였고, 남편은 설거지를 하러 부엌으로 향했다.
역시나 가 역시나. 우리 시모는 달라지지 않는다. 표정이 어두워졌다.
아이들과 같이 노는 것도 그만두고 앉아서 중얼거린다.
"어휴, 쟤는 일도 하는 애가 왜 저런 걸 하나 몰라."
눈치가 보이기 시작한다. 어쩌나, 내가 손가락이 아파 젓가락질도 못하는데.
'어머니, 제가 손가락이 아파서 오빠가 다 나을 때까지만 해 주는 거예요. 저도 오빠 하는 거 맘이 안 편해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구차한 변명이었고, 그렇게 말하는 나도 자존심에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사실 눈 딱 감고 저런 귀에 달콤한 말만 해 주면 되는 것인데 나는 참 그게 힘들다. (그래도 시모 덕에 많이 늘었다.)
갑자기 시모의 눈이 번뜩인다. 불안하다.
"얘. 나 다음 주에 김장하거든? 너 그때 와서 도와라."
"?"
시아버지가 말린다.
"아니, 저번에는 오지 말라더니 이제는 또 오래?"
"어휴! 모르면 가만히 좀 있어요! 몸 아픈 시어미가 김장을 100 포기 넘게 한다는데 얘는 얼마나 불편하겠어요!"
"그래도 그렇지 애 낳은 지 얼마나 됐다고..."
"얘! 너 올 거야, 안 올 거야?!"
남편은 듣고만 있었다. 내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나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반항이었다.
"너 이번에도 대답 안 할 거니?"
또다시 가시 돋친 말투로 나를 찌른다. 이제는 물러서지 않을 거다. 내가 어떻게 극복하고 있는데 또다시 'yes며느리'가 되기는 싫었다.
시모의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하다. 자신의 마음대로 따르지 않는 자는 처형시켜 버리는 폭군의 영혼이 깃들었을까, 힘든 성격이다.
때마침 큰아이가 집에 가자고 울어서 부랴부랴 챙겨 급하게 빠져나왔다.
집에 오고 나서 나는 시모가 나에게 그렇게 말할 때 왜 눈치만 보고 가만히 있었냐고 남편을 나무랐다.
남편은 본인이 거기서 끼면 오히려 화만 불러일으킬 것 같아서 가만히 있었다고 한다.
"그래. 그럴 수 있지. 당신도 중간에서 힘들겠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방관은 안될 거야. 한계가 있어."
남편은 알겠다며 넘겼고, 나도 거기서 그쳤다.
나는 슬슬 한계치가 왔다고 생각했다. 이기적인 시부모와 방관하는 남편, 그리고 어리숙한 며느리.
이 삼 부장은 전 세계에 난무하겠지만 이걸 어떻게 하면 지혜롭게 헤쳐 나가야 하나 싶은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고, 분노도 그만큼 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지혜롭게 해결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고 노력하면 할수록 늪에 빠지는 이 악순환을 어떻게든 해결하고 싶고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었기에 그저 우리 모두 해피한 방향이 분명히 있을 거라고 혼자서 고군분투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