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그리고 노래

비단 위에 꽃을 더하는 것 같았어

by 기꺼움

서율아.


엄마는 네 이름을 버스 안에서 지었어. 아기가 뱃속에 있는 마지막 달에는 운동을 많이 해야 한다고 해서 하루 4km 정도 되는 출퇴근길을 걸어서 오갔는데, 그날은 유독 힘들어서 버스를 탔지. 사람이 꽉 찬 출근 버스였는데 배가 남산만큼 나온 엄마는 손잡이를 꼭 붙잡고 선 채 이런저런 생각을 했어.





"서연, 서은, 서진, 서희..." 머릿속에선 이름 짓기가 한창이었지. 왜 '서'로 시작하는 이름이었냐고? 아, 그건 아주 명쾌하고 단순한 이유란다. 엄마가 서점을 좋아해서 '서'였어. 그렇게 한 글자 한 글자 조합하다 보니 "서율"이라는 이름을 떠올렸지. 그날 버스 창가로 들어온 6월의 햇살처럼 서율이란 이름이 엄마의 마음으로 들어와 반짝이더라.


작은 소리로 "서율, 서율."하고 되뇌는데 뱃속에 있던 네가 대답하듯 귀여운 발길질을 했던 게 기억나(30분에 한 번씩은 태동이 느껴지는 시기였지만). 한자로는 글 서(書)에 음률 율(律)이 어떨까 싶었어. 이름 안에 책과 노래라는 의미까지 담으니 비단 위에 꽃을 더하는 것 같았어.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너에게 선물할 예쁜 이름을 만든 20대 엄마는 행복했단다.


그런데 엄마가 잊은 게 있었어. 엄마가 한글로 이름을 지으면, 한자는 아빠가 정하기로 했었거든. 아쉬웠지만, 약속은 약속이니까. 아빠는 서율이가 태어나기 전후로 한 달 남짓을 고민했고, 상서로울 서(瑞)에 법률 율(律)의 의미를 담은 한자로 출생신고를 했단다. 약간 보수적이고, 가끔 가부장적인 아빠와 정말 잘 어울리는 한자라고 생각해.


그렇지만 서율아, 엄마가 "서율아~"하고 네 이름을 부를 땐 책과 노래까지 품고 있다고 생각해줄래? 책에는 너와 닮은 사람들 혹은 너와 다른 사람들이 복작복작하게 살고 있는데 그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심심할 틈이 없을 거야. 맑은 날, 비가 오는 날, 괜히 기분이 좋은 날, 그냥 슬픈 날 등등 적당한 이유를 붙여 이어폰에서 귀 안쪽으로 흘러들어오는 노래를 들으면 마음이 편안해질 테고. 엄마도 살면서 책과 노래 덕분에 견뎌지는 날들이 꽤 많단다.




오늘은 진짜 너와 수다를 떠는 기분으로 1,000자를 순식간에 썼네(아, 매일 이러면 얼마나 좋겠어). 가끔 책도 노래도 지겨워지는 날엔 하얀 백지에 까만 글자로 생각을 풀어놓는 것도 괜찮겠다. 다 쓰면 엄마한테도 보여줄래? 엄마는 서율이의 첫 번째 독자잖아.


2019년 뜨거운 여름을 통과하며 아이들에게 매일 쓴 편지를 책으로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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