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드루 포터「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문학동네, 2019)을 읽고 쓰다.
표제작인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은 뭉근하게 마음에 오래 남는 서사다. 팟캐스트를 통해 여러 번 귀로 들었고, 책으로도 몇 번을 반복해서 읽었다. 단순히 책의 줄거리로만 요약하자면 콜린이라는 멋진 애인이 있는 여대생 헤더가 서른 살 차이가 나는 물리학 교수 로버트와의 관계에서 느끼게 되는 사랑쯤으로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이야기를 풀어놓기에는 소설을 향한 나의 애정이 가볍지 않기에 소설 속에서 로버트가 예술에 대해 언급했던 문장을 앞세우고, 이 글을 본격적으로 시작해야겠다.
예술을 이해하려면 노력을 해야 한다.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이라는 제목에 담긴 의미를 이해해보고 싶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E=mc2 등 관련이 있을 법한 여러 이론들을 찾아 읽고, 소설의 내용과 문장을 떠올려가며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하며 생각했다. 세상에 태어난 이래로 물리학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궁금해 본 적이 없어서 내 호기심이 낯설었다. 며칠 동안 이 문제를 골몰하던 중에 빛과 물질의 이중성이라는 포스팅을 읽게 되었는데, 간략하게 정리해보자면 이렇다.
빛은 어떤 경우에는 파동성*을 나타내고, 또 다른 경우에는 입자성**을 나타내는데 이를 빛의 이중성이라고 한다. 파동성을 보이는 현상에서는 입자의 성질이 나타나지 않고, 입자성을 보이는 현상에서는 파동의 성질이 나타나지 않는다. 즉, 빛이 입자처럼 행동할 때는 파동의 성질이 사라지고, 파동처럼 행동할 때는 입자의 성질이 사라진다. 그러나 처음 보기에 파동과 입자의 현상들이 대조적으로 보일지라도, 원자세계에 관한 모든 정보를 일상적 언어로 애매모호함이 없이 정확하게 파악하려면 둘 다를 상호보완적으로 사용할 수밖에 없음을 인식해야 한다.
*빛의 에너지가 마치 물결처럼 일정한 굴곡을 형성하고 있어서 여러 가지 색깔을 나타내고 있는 것
** 하나의 물질로서 다른 물질과 충돌하면 충돌된 물질을 움직이게 하는 운동에너지를 갖고 있다는 것
인물들을 빛과 물질의 이중성 이론에 대입하다.
앞서 언급한 빛과 물질의 이중성에 각각의 인물들을 대입해보았다. 헤더가 빛이라면 로버트는 파동, 콜린은 입자다. 이중성을 가진 빛(헤더)이 파동성(로버트)을 보일 때는 파장으로 인해 여러 가지 색을 나타내게 되지만, 입자성(콜린)을 보일 때는 충돌을 통해 운동에너지를 갖는다. 로버트와 함께 있을 때 헤더는 더없는 편안함을 느낀다면, 콜린과 함께 있는 헤더는 행동하고, 미래를 계획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문장으로 봤을 때 차이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와 함께하는 시간이 너무나 빨리 평온하게 느껴졌던 기억이 난다. 마치 평생토록 어떤 깊은 방식으로 그를 알아온 것 같았다.”(101쪽) “나는 5월이면 그와 함께 볼티모어로 간다는 데 이미 동의를 한 터였다. 곧이어 여름이면 우리는 결혼을 하게 될 터였다.”(117쪽) 전자가 로버트를 떠올리는 헤더이고, 후자가 콜린을 생각하는 헤더이다.
파동성과 입자성이 동전의 앞뒷면과 같아서 동시에 두 현상이 나타나지 않듯이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로버트와 콜린이 부딪히는 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심지어 헤더와 로버트가 술집에서 손을 잡고 있는 모습을 콜린이 보게 되었을 때도 콜린은 로버트가 자리를 피해줄 때까지 헤더 곁으로 오지 않는다. “지금은 이상하게 여겨지지만, 그 짧은 몇 초 동안 나는 로버트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는 단지 내 얼굴에서, 표정에서 내가 콜린을 알아본 순간을 읽었고, 내가 자기 손을 놓아버리자 자리를 떠나주었으면 한다는 뜻인 줄을 알았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아무 말 없이 문 밖으로 걸어나갔다. 콜린은 바에 앉은 채 그가 나가는 것을 지켜보았고, 거리를 걸어내려가는 그를 눈으로 좇았으며, 잠시 후 내 앞으로 와서 섰다.”(113~114쪽)
파동성과 입자성이 동시에 나타나지 않지만, 원자 세계에서 모든 정보를 정확하게 파악하려면 이 둘이 서로를 보완해야 한다. 헤더에게 로버트와 콜린이 나름으로 중요한 의미가 되었듯이 말이다. “다른 사람이 당신을 채워줄 수 있다거나 당신을 구원해줄 수 있다고-이 두 가지가 사실상 다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추정하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나는 콜린과의 관계에서 그런 식의 느낌을 받아본 적이 없다. 나는 다만 그가 나의 일부, 나의 중요한 일부를 채워주고 있고, 로버트 역시 똑같이 나의 중요한 또 다른 일부를 채워주었다고 믿을 뿐이다.”(125쪽)
두 사람을 사랑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다.
“그를 사랑하는 것만큼이나 내가 로버트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이 진실이었다.”(115쪽)헤더가 두 사람을 사랑하는 그 진실이 어쩔 수 없는 일로 느껴진다. 우리가 한 사람과 가정을 꾸리고, 사랑하며 살면서도 지나간 혹은 또 다른 누군가를 그리워한다면 그것은 우리 안에 채워지지 않은 무엇(파동성 혹은 입자성)에 대한 간절함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도덕적인 잣대로 두 사람을 사랑하는 것(흔히 불륜이나 바람이라고 불리는 일들)을 비난하는 게 부자연스러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한 사람과의 항상성 있는 사랑을 꿈꾸지만, 나(빛) 역시 이중성을 감추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을 거듭할수록 이해하고 싶은 본성과 이해하고 싶지 않은 이성 사이에서 혼란스럽다. 질문과 호기심으로 시작한 이 글은 정답이 아닌 또 다른 질문만 남기며 끝을 맺는 것 같아 아쉽다. 그러나 눈이 내리던 어느 날 강의실에서 로버트가 낸 방정식의 풀이를 제출한 헤더가(그 도전만으로) 시험이 통과했듯이.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이라는 이야기 안에서 끝까지 최선을 다한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내 마음을 다독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