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켜야 하는 선을 알고 있었다

기꺼운 독서에세이

by 기꺼움

앤드루 포터「강가의 개」,「외출」(『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문학동네, 2019)을 읽고 쓰다.


두 개의 소설은 지켜야 하는 선을 놓쳐버린 아이들과 그걸 지켰던 아이들의 방황을 소재로 하고 있다. 나의 유년기를 떠올려보면 언제나 후자였다. 지켜야 하는 선을 알고 있었고, 그 선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선 밖의 세상에 대한 호기심은 두려움을 이기지 못했고 선 안의 세상이 주는 압박감을 견디는 편이 수월했다. 그것이 나의 성향이나 선택이었다기보다는 내가 자라난 환경과 상황이 만들어낸 결과일 수도 있다는 것은 어른이 되어서야 알았다. 사람의 인생은 어떤 흐름 안에서 예기치 못하게 비틀리는 일이 빈번하지만, 그것이 유년 시절이라면 훨씬 위태롭게 느껴진다. 모든 게 약하고, 미숙하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강하고, 완전하다는 착각에 빠져있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강가의 개의 화자는 동생이다. 스물여섯인 그가 과거를 회상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는 전개된다. 학창 시절 그는 형 더그의 탈선에 대한 각종 소문으로 학교에서는 보이지 않는 존재로 숨죽이며 살아간다. 그에게 형은 미워할 수 없는 사람이지만 형을 둘러싼 소문은 나를 굴욕스럽게 만든다. 열일곱 살, 형과 마지막으로 함께 보낸 여름의 기억은 화자를 오랫동안 놔주지 않는다. 특히, 어느 파티에서 캐리 휴버라는 선배에게 형과 형의 친구 트레이가 성 착취를 했던 그 날, 부엌에서 기다리고 있던 그는 다시 돌아오는 형의 표정을 잊지 못한다. 만면에는 웃음이 가득하지만, 어딘지 어색한 웃음.(이 장면이 묘사된 부분을 읽으며, 쓰레기 폐기장에서 죽은 강가의 개들의 이미지가 겹쳐졌다.) 이 글의 화자가 캐리 휴버였다면, 그날의 사건이 삶의 족쇄가 되어 평생의 트라우마로 그려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미리 알려주고 싶은 사실이 있는데 내 인생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별로 깔끔하지 않지만 반으로 나누어져 있다. ‘비포’가 있고 ‘애프터’가 있다. 몸무게가 늘기 전, 몸무게가 늘어난 후, 강간을 당하기 이전, 강간을 당한 이후.
- 록산게이 『헝거』(사이행성, 2018) 중에서


록산 게이의 헝거라는 책 속의 문장들이 선명해지면서 더그 형과 트레이가 벌인 일들이 더욱 끔찍하게 다가왔다. 화자인 내가 그날의 일을 거듭 상기시키는 이유도 같은 장소에 있었다는 죄의식을 도저히 떨쳐낼 수 없었기 때문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문장에는 사건의 기억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은, 자신과 전혀 무관한 일이기를 바라는 화자의 마음이 있다. “얘야, 이 일은 너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이란다.”(154쪽)




이제 열여섯 살 화자와 그의 친구의 짧은 일탈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외출이라는 소설을 살펴보자. 강가의 개와 마찬가지로 어른이 되어 학창 시절을 회상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지만, 전작과 분명하게 대조적인 부분은 이들은 방황 속에서도 지켜야 할 선을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제목 ‘외출’의 사전적인 의미가 ‘집에서 벗어나 잠시 밖으로 나간다는 것’과 비슷한 무게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나와 친구 태너는 부잣집 아이들과 같이 학교를 다니지만, 아이들 무리에 낄 수 없어 겉도는 평범한 학생이다. 둘은 호기심을 품고 아미시(새로운 문명을 완강히 거부하며 농경생활을 하는) 공동체의 여자아이들을 만나 데이트를 한다. 아미시의 아이들은 매주 금요일 밤 몇 시간 동안 농장 밖에서 노는 것을 허락받기 때문이다. 곧 화자는 레이철이라는 밝고 싱그러운 여자아이와 꾸준히 만나게 되는데 두 사람 모두 지켜야 할 선을 알고, 끝내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게 된다. 일탈 속에서도 자신의 자리를 인정하고, 순응하는 아이들이다. 다만, 이 이야기 속에서 저항을 상징하는 아이작 킹이라는 인물이 눈에 띈다. 공동체 아이들을 향한 마을 아이들의 조롱과 무차별 폭력에도 아이작 킹 만큼은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끝까지 싸운다. 이 모습을 바라보는 화자의 문장은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감정인 듯하다.


“나는 그 상황의 무익함을 인정하지 못하는 그가, 다른 아이들처럼 패배를 인정하고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 그가 미웠다. 나머지 우리들처럼 - 내 부모님이 그러는 것처럼, 태너가 그러는 것처럼, 내가 그러는 것처럼 - 자신의 자리를 인정하지 않는 그가 미웠다.”(174쪽)




우리가 각자의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듯이 유년기에도 서로 다른 생각과 가치관 혹은 환경적인 영향을 받으며 모두가 다른 모양의 기억을 만들어낸다. 소설 속의 인물들은 단편적으로 해석되지 않는 고유의 한 사람이 되어 살아간다. 작가는 누구의 삶이 옳고, 그르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저 벌어진 상황과 복잡한 감정들 속에 독자의 공간을 마련해둔다. 그곳에서 과거를 들여다보고, 현재 내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사유하면서 나라는 존재가 단단해지고, 타인을 바라보는 눈도 깊어진다. 우리가 볼 수 있는 한 두 가지 면이 그 사람의 전부인양 판단하는 것을 경계하게 된다. 흑백 논리가 만연한 세상에서 휩쓸리지 않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문학을 읽는 일임을 확인하며, 두 작품 속 모든 인물들을 떠오르게 하는 문장을 덧붙인다.



발을 디디는 곳을 보지 않았던, 아래쪽에 무엇이 있는지 염두에조차 두지 않았던 우리의 대책 없음에, 우리의 눈먼 행동에 아직도 몸이 떨려온다.(1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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