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과 일기

2020년 7월 24일 새벽 공간 여덟

by 기꺼움



새벽 일기



4시 50분에 눈을 뜨면 거실로 나와 창문을 연다. 빛을 머금은 어둠을 보고, 아침을 준비하는 새소리를 듣고, 공기 안에서 시작의 냄새를 맡는다. 그런 생기를 느끼며 밖을 바라보는 게 매일의 일과다. 오늘도 역시 베란다 창틀에 기대서 밖을 보고 있는데 어디선가 슥슥 빗질하는 소리가 들렸다. 환경미화원 아저씨가 거리를 쓸고 계셨다. 쓰레받기에 붙여둔 불봉이 반짝거렸다.


기계로 대체된 일인 줄만 알았다. 언젠가 도로가를 쓸며 지나가는 청소차를 본 뒤로 그런 줄 알았다. 차로 이동하며 종량제 봉투를 수거하시는 분들은 봤지만 직접 청소하시는 장면은 생경했다. 리드미컬한 빗자루 소리가 듣기 좋아서, 보이지 않는 시간에 열심을 다하는 아저씨가 계셔서 평소보다 더 오래 서 있었다. "수고 많으세요."라고 마음으로 인사를 건넸다.





새벽에 일기를 쓰기 시작하면서 글을 쓰는 일에 대한 부담이 많이 덜어졌다. 그저 생각을 기록한다는 마음으로 쓰니 가볍다. 특별한 기술을 요하지 않는 스트레칭을 하는 기분이다. 마음먹고 요가나 필라테스를 하려면 동작의 난이도에 지레 겁먹게 되지만, 허리 돌리기나 발목 털기는 수월하지 않은가. 김연수 작가의 산문집 시절 일기에서 일기에 관한 문장을 읽고 반가웠다.

일기의 본질은 쓰는 행위 그 자체에 있다는 사실은 스테파니 도우릭의 『일기, 나를 찾아가는 첫걸음』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은 일기 쓰기는 물론이거니와 다른 모든 글쓰기와 관련해서도 상당히 훌륭하다. 일기를 잘 쓰기 위한 지침 같은 건 이 책에 없다. 대신 이 책은 아무것이나, 심지어는 쓸게 없다는 사실마저도 일기의 소재로 삼을 것을 권한다. 일기란 잘 쓰는 게 아니라, 자주 쓰는 것이기 때문이다.

- 김연수 『시절 일기』(레제, 2019) 18쪽 중에서



심지어 쓸게 없다는 사실마저도 일기의 소재로 삼으라는 말은 정말 든든하다. 언젠가 쓸게 없는 날, 그것을 소재로 삼아 일기를 써봐야겠다. 여담이지만 소설가가 쓴 산문집을 찾아 읽는 편이다.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 내는 소설가들의 진짜 목소리를 듣는 게 좋아서다. 완벽한 소설의 세계에서 볼 수 없는 일상의 삐걱거림이나 글쓰기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문장은 인간적이다. 무대 밑으로 내려온 연극배우와 소주를 한 잔 먹게 된다면 비슷한 기분이 들 것 같다.


금요일이다. 회사에 가는 마음이 가장 가뿐한 날이다.

가만히 보니 금요일과 일기, 어쩐지 닮은 구석이 있는 것 같다.




새벽 문장



그러나 도깨비도 아니고 우리가 어떻게 두 번 이상 삶을 살 수 있단 말인가? 우리가 실수투성이 인생을 살아가는 것도 당연하다. 그렇다고 영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메모 앱인 에버노트의 광고 카피는 'Second Brain'이다. 갑자기 떠오른 아이디어나 해야 할 일 등을 기억하려고 애쓰는 대신 에버노트에 저장해두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보라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일기를 상품화하는 회사가 있다면, 그 광고 카피는 'Second Life'가 될 것이다. 캐서린 맨스필드가 말한 자기이해란 바로 이런 뜻이다. 우리는 글을 쓰는 행위를 통해 한 번 더 살 수 있다.



- 김연수 시절일기(레제, 2019)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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