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점 안에서 빛나는 순간

2020년 7월 31일 새벽 공간 열셋

by 기꺼움



새벽 일기



습관이 되길 기대하는 건 욕심일까? 새벽에 일어난 지 2주가 되어 가는데 첫날 기상만큼 가뿐하지가 않다. 오늘은 다시 눕고 싶은 마음을 이기느라 힘들었다. 슬럼프가 온듯하다. 슬럼프가 왔다는 건, 슬럼프가 있는 곳까지 걸어온 것이라고 이제 거의 다 됐다는 의미라고 알려주신 어느 강사님의 조언을 생각한다. 다음 주에는 보다 자연스러운 새벽 기상이 되기를.




어제는 일곱 살 아들을 데리고 치과에 갔다. 가장 안쪽 새로 올라온 어금니 세 개에 충치가 생겨서였다. 양치를 꼼꼼하게 잘하는 편이라 큰 걱정이 없었는데. 이가 약한 큰 애에 비해 정기 검사를 소홀히 한 탓이 크다. 두 번의 치료 계획을 세웠고 어제가 두 번째 방문이었다. 눈물을 꾹 참고 자동 의자 위로 올라가는데 대견하면서도 마음이 짠했다.


두 아이를 키우는데도 각자 타고난 기질이 다르다. 치과만 해도 그렇다. 첫째는 치과에 가기 며칠 전부터 나를 들들 볶고, 진료 의자에 눕기까지 오분은 더 걸리는 것 같다. 한 번은 의사 선생님의 손까지 잡아가며 치료를 거부해서 난처했던 적이 있다. 반면 둘째는 치과에 도착하면 겁을 먹긴 하지만, 미리 걱정하거나 떼를 쓰지 않는다. 진료실에서도 흐르는 눈물을 쓱쓱 닦고 씩씩하게 치료를 받는다.


되려 내가 마음을 졸이느라 힘이 들었다. 고백하자면 첫째가 나를 많이 닮았다. 간호사 언니에게 양손이 잡혀서 주사실로 질질 끌려들어 갔던 날들. 병원에 갈 때마다 생난리를 치던 기억은 여전히 또렷하다. 당시 엄마가 얼마나 난감하셨을지 이제야 겨우 안다. 어느덧 어른이 되어서 종종 헌혈까지 하는 나를 보면 별일이 다 있다며 신기해하시는 엄마다.




치료를 마친 아들과 블럭방에 갔다. 아이가 200피스가 넘는 레고를 조립하는 동안 짬짬이 책을 읽었다. 블럭방에서는 피스를 찾아줘 가며 읽어야 해서 무겁지 않게 볼 수 있는 에세이가 적당하다. 아무튼 시리즈의 따끈한 신간인 원도의 아무튼, 언니를 가져갔다. 『경찰관속으로라는 독립출판물이 입소문이 나면서 개정판까지 출간했던 작가의 책이다. 전작을 좋게 읽어서 반가움을 품고 읽기 시작했다.


세 남매의 막내. 장애를 겪는 오빠의 동생으로 태어나 '납작하게 엎드린 가자미'같이 살았다던 작가는 이른 나이에 경찰에 입직해 동기 언니들을 만나면서 삶이 입체적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런 '언니'들과의 소소한 에피소드부터 친언니와의 이야기, 엄마의 언니인 이모의 사연 그리고 경찰이라는 직업을 통해 경험한 각기 다른 여성들의 곤란과 참혹까지 예민한 시선으로 다루고 있다.


그럼에도 최대한 많은 여성이 길 위로 나오기를, 어디로든 갈 수 있기를 나는 바란다. 우리가 가지 못할 곳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막연한 느낌을 현실의 생생한 감각으로 와락 안아보기를.

- 원도 『아무튼, 언니』(제철소, 2020) 중에서





우리는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지만 무수한 타인과 연결되어 있고, 그 연결점 안에서 빛나는 순간들이 삶을 지탱하는 힘이 돼준다. 작가의 '언니'들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며 나를 살게 하는 나의 '언니'들을 생각했다. 큰딸로 태어나서 두 살 터울의 여동생이 한 명 있지만, 사회생활을 시작한 뒤로는 주로 언니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첫째지만 막내를 꿈꾸는 나는 언니들이랑 있을 때 편안하다.


'함께 숨 쉬는 한 나 자신을 더 괜찮은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게 만드는 나의 '언니'들을 떠올리는 금요일 새벽이다. 지금의 시간과 공간이 값지다. 애써 일어난 보람이 있다.




새벽 문장



언니들 앞에서라면

나는 마냥 철부지가 되어도 괜찮다.


아무튼, 언니만 있으면 된다.

함께 숨 쉬는 한 나 자신을 더 괜찮은 사람으로,

쓸모 있는 구성원으로 서고 싶게 만드는,


주어진 생을 최대한 멋지게 살아내기 위해

노력하고픈 마음이 솟구치게 하는

언니들은 진정 나의 구원자다.


다시 만난 이 세계를

나는 절대로 놓치지 않을 테다.



- 원도 아무튼, 언니(제철소, 2020)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