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이 새롭다. 매일 쓰면 익숙해질 줄 알았는데 역시 생각대로 되는 일은 많지 않다. 언젠가 매일 아침 운동을 하시는 분께 "이제 운동이 몸에 붙어서 자연스러우실 것 같아요."하고 말을 건넨 적이 있는데,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아침마다 운동하기 싫어서 힘들어요." 운동을 하고 나면 개운하긴 하지만 막상 시작하려면 귀찮은 마음이 앞선다고 하셨다.
글쓰기 역시 그런 것 같다. 아주 가끔 쓰고 싶은 이야기가 넘쳐서 시작부터 흥이 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날들은 첫 문장을 쓰기가 버겁다. 매일 쓰면 조금 달라질까, 했는데 갈수록 백지를 멍하니 바라보는 시간이 늘고 있으니. 뭔가 거꾸로 가는 기분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헤매는 날들이 쌓이면 결국 길을 찾겠지.'라는 마음으로 오늘도 키보드로 활자를 만든다.
주말에는 독박 육아를 했다. 꽤 익숙한 일이다. 남편이 시골에서 어머님 농사를 도와야 해서 어쩔 수 없다. 가끔 두 아이 중 한 명을 데려가기도 하는데 농번기에는 이조차 쉽지 않다. 이번 주에는 비가 많이 와서 손 봐야 할 곳도 많다고 했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너무 힘들었는데 일 년 전부터 조금씩 괜찮아지는 중이다. 그동안에는 내 입장에서 내가 힘든 점만 보였는데, 이제는 남편의 고됨을 이해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토요일에는 하루 종일 집에 있었는데, 일요일에는 나도 아이들도 지루해서 과학관을 갔다. 무료입장인 데다 출입자 통제나 방역도 철저하게 하는 편이라 안심하고 다니는 곳이다. 신난 강아지처럼 뛰어다니는 애들을 보니 나오길 잘했구나, 싶었다.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시설이 많아서 흥미롭게 관람했다. 물론 짬짬이 싸우고, 징징거리긴 했지만. 그 정도야 뭐.
집에 돌아와 보니 옥수수, 방울토마토, 노각, 복숭아, 수박이 식탁 위에 놓여 있었다. 남편은 가져온 것들을 깨끗하게 씻어 정리해두고 옥수수를 찌고 있었다. 힘들었을 텐데 티도 안 내고 애써줘서 고마웠다. 서운함과 불만이 쌓이기 전에 서로의 기분을 배려하면 다툴 일도 점점 줄어드는 것 같다. 따끈한 옥수수는 알은 작지만 쫀득쫀득 맛있었다.
틈틈이 읽은 책은 류승연 작가의 『배려의 말들』이었다. 지난 금요일에 서점에 갔다가 우연히 발견한 책이었다. 읽지 않은 책들이 집에 많아서 잠깐 구경만 하고 오려고 했는데. 검은 바탕에 금색으로 박혀 있는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책을 들어서 살펴보니 유유 출판사에서 만드는 '문장 시리즈'였다.출판사에 대한 신뢰는 물론 『쓰기의 말들』과 『태도의 말들』을 좋게 읽은 터라 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책날개에 있는 저자의 소개 중 일부를 옮겨오자면 이렇다.
"사회부를 거쳐 정치부 기자로 6년 동안 국회를 출입하며 갈수록 더 빠르게 일하는 바쁜 사람이 되었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나만큼 빨리, 열심히, 잘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다 결혼을 하고 쌍둥이를 임신해 장애 아이를 낳았다. 발달이 느린 아들과 함께 살며 기다리는 법, 이해하고 참는 법을 배웠다."
책의 판형은 크지 않지만 올바른 배려를 배울 수 있는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무심코 뱉는 말들이 가진 공격성, 비장애인은 간과하기 쉬운 불편함, 아이를 키우며 살아가는 엄마로서의 어려움 등이 구체적으로 담겨 있다. 쉽게 잘 읽히는 글이지만 독자가 생각해봐야 하는 지점이 많은 책이다. 무엇보다 문장 곳곳에 삶을 긍정하는 작가의 태도가 배어 있다.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프레임을 벗어나 개개인을 존중하는 마음을 가진다면 서툴지 않게 배려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남은 이야기들을 마저 읽고 출근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