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설임 없이 일어났다. 저녁을 가볍게 먹은 탓에 빵이 너무 먹고 싶어서였다. 저녁에 탄수화물을 안 먹기 시작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2주만 그렇게 해보자며 가까운 이들과 함께하는 중이다. 저녁 식사가 주는 기쁨은 없지만, 속이 훨씬 편하고 무엇보다 새벽이 기다려진다. 아침에는 입이 껄끄러워 음식을 못 먹는 사람이 있는데, 나는 새벽부터 입이 달다. 부드러운 크림빵을 순식간에 먹었다.
피아노 연주곡을 자주 듣는다. 네이버 오디오 클립에 오느린 피아니스트가 운영하는 '수고했어, 오늘도 힐링 음악'라는 팟캐스트는 거의 매일 듣는다. 각각의 콘텐츠마다 한 문장씩 이름이 붙어 있는데, "일하다 잠깐 쉴 때 듣는 피아노 음악", "멍하니 있고 싶을 때 듣는 피아노 음악", "지칠 때 아무 생각 없이 듣는 피아노 음악"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선택해서 듣곤 한다. 그때마다 마음이 편안해져서 좋다.
피아노를 5년 정도 배웠다. 초등학교 때 3년 넘게 학원을 다녔고, 중학교 때는 집에서 레슨을 받았다. 부모님은 음악에 대한 로망이 있으셨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 피아노까지 사주실 정도로 열성적이셨다. 나는 성실한 학생이었지만, 음악에 소질은 없었다. 피아노 선생님께 30cm자로 손등을 꽤 많이 맞았다. 실력이 좀처럼 늘지 않는 제자가 답답하셨을까.
꾀부리지 않고 열심히 배웠건만, 나는 지금 피아노를 전혀 못 친다. 그렇게 오래 배웠으면 한 곡은 쳐야 하지 않나? 피아노 앞에 앉으면 기억나는 건 젓가락 행진곡뿐이다. 부모님은 한참 동안 피아노에 미련을 못 버리시다가 내가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나서야 처분하셨다. 피아노를 판 돈으로 정수기와 김치냉장고를 사셨다. 요즘도 피아노 이야기가 나오면 허탈하게 웃곤 하신다.
피아노는 못 치지만 연주곡 듣는 것을 좋아하는 어른이 되었다. 학원을 꾸준히 다닐 수 있었던 건 음악을 좋아하는 마음 때문이었던 것 같다. 많이 혼나면서도 피아노가 싫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으니까. 어렵게 '소녀의 기도'라는 곡을 완성해서 연주했을 때 환해지던 엄마의 얼굴이 떠오른다. 비록 손끝은 배움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마음은 피아노와 함께한 순간들을 기억하고 있다.
철학자 김진영의 애도일기 『아침의 피아노』를 읽고 있다. 책의 첫 페이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김진영 선생님은 임종 3일 전 섬망이 오기 직전까지 병상에 앉아 메모장에 <아침의 피아노>의 글들을 쓰셨다.
일기 형식으로 구성된 글은 삶에 대한 김진영 철학자의 짧은 단상들이 담겨 있다. '피아노는 사랑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철학자의 글은 한 문장, 한 문장 가슴에 맺힌다. 그의 문장들은 슬픈데 따듯하다. 울고 싶다가도 다시 살고 싶어 진다. 어떤 날의 기록은 흔들리고, 어떤 날의 기록은 평온하기 때문일까.
돌보지 않았던 몸이 깊은 병을 얻은 지금, 평생을 돌아보면 만들고 쌓아온 것들이 모두 정신적인 것들뿐이다. 그것들이 이제 시험대에 올랐다. 그것들이 무너지는 나의 육신을 지켜내고 병 앞에서 나 사진을 지켜낼 수 있을까. 이제 나의 정신적인 것은 스스로를 증명해야 한다. 자기가 진짜인지 가짜인지를.(29쪽)
그런 생각이 든다. 그동안 내가 읽고 생각하고 확신하고 말했던 그것들이 진실이었음을 증명하는 시간 앞에 지금 나는 서 있다는 그런 생각.(41쪽)
문득문득 글에서 느껴지는 아득함에 놀란다. 오랜 정신의 단련이 이토록 깊은 문장을 쓸 수 있게 해주지 않았을까. 책 표지를 자꾸 매만지게 된다. 가장 가까운 곳에 두고 때때로 펼치게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아침의 피아노』는 그동안 읽은 책들 중에서 손에 꼽을 만큼 아름다운 책이다.
새벽의 문장
아침의 피아노 베란다에서 먼 곳을 바라보며 피아노 소리를 듣는다. 나는 이제 무엇으로 피아노에 응답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틀렸다. 피아노는 사랑이다. 피아노에게 응답해야 하는 것, 그것도 사랑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