곶감보다 무서운 유튜브

2020년 9월 7일 새벽 공간 서른여덟

by 기꺼움




나로 숨 쉬는 시간



'새벽 공간'이라는 소모임을 운영한 지 두 달여, 이번 주 수요일이면 약속한 날짜가 끝난다. 혼자일 때는 오래 지속하기 어려웠던 새벽 기상을 여름 지나 가을까지 할 수 있었던 건 함께라서 이다. 새벽 5시에 눈을 뜨면 10분 정도는 다시 자고 싶은 욕구와 싸워야 하는데 모임 덕분에 이겨낼 수 있었다. 같은 루틴을 실천하고자 하는 마음들은 서로에게 힘이 돼주었다.


새벽에 일어나서는 주로 책을 읽고, 일기를 썼다. 얼마 전부터는 시론이나 현대문학사를 공부하기도 한다. 그저 읽고, 쓰는 일을 잘하고 싶어서 하는 공부다. 해야만 하는 일이 아닌 하고 싶은 일에 시간을 내어주며 보낸다. 그런 시간들은 나 자신을 아껴주는 기분이 들게 한다. 하루 중 가장 조용한 새벽 시간은 나로 숨 쉬는 시간이다.




곶감보다 무서운 유튜브



휴직을 한 뒤에 코로나가 다시 확산되면서 두 아이와 함께 하루를 보낸다. 워킹맘이라서 겪어야 했던 죄책감이 사라진 자리에는 전업맘의 고단함이 쌓인다. 정말 지지고 볶는다는 표현이 너무 알맞은 일상이다. 아침을 먹이고 나면 점심이고, 점심을 먹고 나면 저녁이다. 요일 감각은 없어지고 시도 때도 없이 이어지는 두 아이의 다툼에 화낼 힘도 없을 지경이다.


며칠 전에는 눈 안에 핏줄이 터졌는데 엄마가 힘들어서 이렇게 되었다며 아이들에게 호소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엄마의 아픔은 유튜브 시청의 위력을 따라가지 못한다. 무슨 뜬금없는 말인가 하면 싸우지 않으면 유튜브를 보여준다고 약속했을 때 가장 다툼이 적다. 두 아이가 노력하는 게 눈에 보일 정도다. 호랑이보다 무서운 건 곶감이고, 곶감보다 더 무서운 건 유튜브인 것 같다.




일곱 해의 마지막



아이들이 유튜브를 보고 있으면 나는 책을 읽는다. 뭔가 거꾸로 된 것 같아서 씁쓸하지만 내게도 휴식이 필요하니까. 주로 소설이나 시를 읽는데 지금 특히 빠져 있는 책은 김연수 작가의 일곱 해의 마지막(문학동네, 2020)이라는 소설이다. 시인 백석(기행)의 삶을 그린 소설인데 백석 시집과 함께 읽고 있다. 그립고, 쓸쓸하고, 아름다운 이 이야기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언젠가 소설에 대한 긴 서평을 쓰게 되겠지만, 최근 곱씹게 되는 문장을 일기에 남겨둬야겠다. 결말을 알고 사는 삶에 대해 책 속의 러시아 시인 벨라가 하는 생각이다. "인생을 거꾸로 산다면 어떻게 될까? 결말을 안 뒤에 다시 대조국전쟁을 거쳐 십대 시절로 돌아간다면? 장차 시인이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네크라소프의 시를 읽는다면? 얘는 전쟁에 가서 돌아오지 못할 거야, 라고 생각하며 급우와 대화를 나눈다면? 그렇다면 원래보다 더 슬플지는 모르겠으나 그 순간에 더욱 집중하긴 할 것이다.(26쪽)"


김연수 『일곱 해의 마지막』(문학 동네, 2020) 중에서


인생의 결말을 알고 순간을 산다면 나는 어떻게 살게 될까? 시인 벨라의 말대로 슬프겠지만 현재에 더 집중하게 될까. 어쩌면 그건 어떤 결말인가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 너무나 끔찍한 결말이라면 그것에서 헤어 나오지 못해서 지금을 망쳐버릴지도 모른다. 결말로 치닫는 오늘이 무섭고, 두려워서 제대로 잘 살아내지 못할 것만 같다. 선택권이 주어진다면 나는 결말을 모르고 살고 싶다. 인생에서도 스포일러는 별로다.




이제 조금 있으면 아이들이 하나 둘 눈을 뜨고 "엄마"를 부를 것이다. 요 며칠 웃음기가 싹 사라진 엄마였는데, 오늘은 마음먹고 열 번만 웃어야겠다.(다짐을 문장으로 남겨두면 실천하게 되는 힘이 있다.) 이렇게 보내는 하루가 내 삶의 결말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어차피 운명이 정해져 있다면 달라질 게 없으려나? 쓸수록 물음표만 늘어간다.


© Photo by Mark Fletcher-Brow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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