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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꺼움 Oct 17. 2020

나도 여기 있을게

[오늘, 영화] 노아 바움백 <프란시스 하 Frances Ha>

 


앞으로 쓰게 될 글은 영화에서 한 줌의 영감을 얻어 쓰는 나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 스포일러는 거의 없겠지만, 재미까지 없어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길 바란다. 첫 번째 영화 '프란시스 하'는 스물일곱 견습 무용수인 프란시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프란시스를 통해 나를 본다. 인생을 잘 살아보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했던 20대는 그렇기 때문에 더 두렵고, 혼란스러웠다. 다가올 미래도, 주변과의 관계도 흐릿하기만 했던 그때는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은 괜찮은가? 스무 살에 기대했던 드라마틱한 변화는 거의 없다. 여전히 잘하고 싶은 마음 앞에서 두렵고, 흔들린다. 앞으로의 생활도 사람과의 관계도 불투명하긴 마찬가지다. 다만, 시간은 요령을 주었다. 새로운 일에 도전하지 않거나, 낯선 관계를 만들지 않는 방법으로 현실에 안주하며, 실패와 상처로부터 가능한 멀리 도망가는 것. 슬프고, 아픈 대신 무료하고, 심심한 일상을 반복하며 사는 것이 그것이다.


이십 대의 나는 많이 울었고, 그보다 많이 웃었다. 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 돈을 벌었다. 평일에는 학교에서 근로장학생으로 일했고, 주말에는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렇게 한 달 45만 원 남짓의 돈으로 교통비, 교재비, 식비를 해결했다. 3학년 때부터는 취업을 위해 다시 수험생이 되어 독서실 아르바이트를 하며 공부했다. 뭐 하나 쉬운 게 없다고 훌쩍거리던 그때지만, 돌이켜 보면 웃게 되는 기억이 훨씬 많다.


프란시스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영화를 볼 수 있었던 건 나 역시 지나온 시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훗날 그녀의 그 시절이 흑백이 아닌 다채로운 색을 갖게 될 거란 걸 경험으로 알고 있으니까. 좋고 나쁘기를 반복하는 친구 소피와의 관계, 돈 없이 훌쩍 떠나 빚만 남긴 파리 여행, 무용수라는 간절한 꿈에서 한 발 벗어난 일을 시작하게 된 것까지도 나름의 의미를 품은 젊은 날의 기억으로 남게 될 테지.


그녀는 분명 잘 살아갈 것이다. 내게 그런 믿음을 준 영화 속 장면은 아주 짧은 몇 초였다. 차가운 복도 바닥에 앉아 서럽게 울고 있는 어린 무용수가 있다. 그 모습을 본 프란시스는 "괜찮아?" 하고 묻더니, 아이 앞에 앉으며 조용히 말한다. "나도 여기 있을게." 누군가의 슬픔을 소리 없이 나눌 수 있는 사람의 인생은 따뜻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스크린 밖에서 30대 프란시스가 영화를 보고 있을 것만 같다. 서투르지만 찬란했던 시절을 그리워하며.





울고 있는 아이 곁에 앉아 있는 프란시스


프란시스가 떠난 여행지였던 파리의 불빛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1329/clips/205

* 네이버 오디오 클립 "우리가 사랑한 영화들" 함께하며 쓰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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