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꺼움 Nov 25. 2020

칠판에는 나눗셈이 쓰여 있어야

[오늘, 영화] 리처드 링클레이터 <스쿨 오브 락>(2003)


안녕, 아.



엊그제 무리 지어 날아가는 참새들을 보고 낙엽이 바람에 날리는 줄 알았다는  말에 웃었는데, 어느덧 바깥공기는 겨울을 품게 된 것 같아. 춥다. 여름에 태어난 네가 열 번째로 만나는 겨울이네. 올해는 눈이 예쁘게 내리면 좋겠어. 그럼 우리는 부드러운 털실로 짠 목도리를 두르고, 흰 눈을 밟으면서 산책을 하는 거야. 돌아오는 길에는 따끈한 잉어빵을 사 오자. 집에서 영화를 보며 먹으면 더 맛있을 거야.

 



오늘 영화 <스쿨 오브 락>(2003)은 어땠어? 정말 재미있었지. 영화가 제작된 연도를 보더니 "2003년이면 내가 태어나기 한참 전이잖아." 하고 놀라면서도 들떠 있던 네 표정이 생생하네. 얼떨결에 선생님이 듀이(잭 블랙)가 반 아이들과 락 밴드를 만들게 되는 이야기였잖아. 영화 소개에 적힌 짧은 줄거리를 읽고, 너랑 같이 봐야겠다고 생각했어. 율이는 노래를 좋아하니까, 분명 즐겁게 볼 것 같았거든.


영화 초반 즈음에 칠판 위'락의 역사'를 써내려 가는 듀이를 보며 네가 말하더라. "칠판에는 나눗셈이 쓰여 있어야 하는데..." 3학년이 되면서 처음 배운 나눗셈을 어려워하는 율이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어. 공부에서 얻는 즐거움을 알게 해주고 싶은데 생각만큼 쉽지 않네. 하긴 엄마도 이제야 조금씩 알게 된 거니까. 영화 속 듀이는 누구보다 멋진 선생님이었어. 아이들이 지닌 재능을 발견해서 임무를 주고, 실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칭찬해줬잖아. 그것도 에너지 넘치게 말이야.


<스쿨 오브 락>(2003) 스틸컷 중에서



우여곡절 끝에 밴드는 공연을 할 수 있게 되었는데, 공연이 시작되기 직전에는 스크린 밖에 있는 우리까지 덩달아 긴장했잖아. "내가 더 떨리지"하며 엄마 손을 꽉 잡는 율이가 귀여웠지. 듀이가 조명을 담당하는 아이에게 눈을 맞추며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넌 할 수 있어"라고 용기를 주는 장면은 최고였어. 엄마까지 씩씩해지는 기분이 들더라니까. 이들 밴드의 공연은 완벽했고, 엄마는 꾸 눈물이 날 것 같더라. 감동적이고, 재미있는 이야기였어. 엔딩 크리디트가 올라가며, 밴드가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엔딩 자막까지 웃기는 영화'라는 포스터에 적힌 문장을 생각나게 했고, 그렇게 엔딩만 두 번을 봤지.


<스쿨 오브 락>(2003) 스틸컷 중에서


영화가 끝나고 작게 줄인 화면 위쪽에 있는 '좋아요' 표시를 보며 네가 말했어. "엄마, 우리 하트 추가해줄까?" 하트를 꾹 누른 뒤에도 우리는 한동안 마주 볼 때마다 웃었지. 율이는 빨래를 널고 있는 엄마 곁으로 와서 주말에 아빠랑 동생이랑 영화를 보고 싶다고 말했잖아. 다시 보고 싶은 영화는 그만큼 좋았다는 거니까. 역시 함께 보길 잘했다 싶었어.




율아! 엄마는 영화에악기를 연주하고, 노래를 하며 밝게 웃는 아이들을 보면서 우리 율이가 웃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던 날들이 떠올랐어. 작고, 작았던 네가 커갈수록 엄마의 기대도 하나둘씩 늘어간 것 같아. 이제  기대를 가만히 살피려고 해. 혹시 엄마의 욕심이 있다면 덜어내 볼 거야. 엄마는 네 안에서 빛나고 있는 게 뭔지 발견해서 함께 가꿔가고 싶거든. 영화 속 듀이가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넌 할 수 있어."라고 말했던 것처럼 용기를 주는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존중이라는 단어를 자주 생각해. '존중'은 '높여서 귀하게 대한다'는 뜻을 가진 단어란다. 엄마는 너를, 너는 엄마를 우리 서로를 존중하면서 살자.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사랑해, 율아.


http://naver.me/FN2WG3kH

* 네이버 오디오 클립 "우리가 사랑한 영화들" 함께하며 쓰는 글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영화를 보는 마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