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꺼움 Dec 02. 2020

Where are we?

[오늘, 영화]  데미언 채즐 <라라랜드>(2016)


나는 주로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책의 문장에 기대서 생각을 풀어내며 한 편의 글을 완성한다. 서평이라는 장르가 익숙해질 즈음 영화 리뷰가 써보고 싶어 졌다. 처음에는 서평을 쓰는 것처럼 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써보려고 하니 쉽지 않았다. 영상에는 책과 달리 의지할 문장이 없었고, 펼쳐놓은 백지 위에서 커서만 깜박거렸다. 몇 번의 시도 끝에 영화에 관한 글을 쓰는 일을 뒤로 미뤄두었다.


"쓰라는 사람도 없는 걸, 뭐~"


취미로 글을 쓰는 나는 종종 동력을 잃는다. 청탁이나 마감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글쓰기로 얻는 성취감 이면에는 '안 해도 그만'이라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다. 네이버 오디오 클립 '조금 적어도 좋아'에서 <우리가 사랑한 영화들>이라는 프로젝트가 공개되었을 때, 선뜻 참여하기로 결심한 건 혼자서는 영화 에세이를 쓸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마감'이 있는 프로젝트 속으로 가만가만 걸어 들어갔다. 여섯 편의 영화와 여섯 편의 글, 끝으로 풀어내할 일곱 번째 영화가 눈 앞에 있다.  







마지막 영화는 데미언 채즐 감독의 <라라랜드>(2016)다. 기회가 되면 꼭 봐야지, 생각하고 있던 영화여서 설레는 마음으로 보기 시작했다. 마법 같은 영상, 감미로운 음악, 슬프고 다정한 시나리오까지 취향에 잘 맞는 영화였기에 매료되지 않을 수 없었다. 두 주인공이 노래하고, 춤추는 장면마다 눈과 귀가 황홀했다. 네버랜드를 향해 날아가는 동화 속 피터팬과 웬디처럼 수많은 별들 속에서 춤추는 두 사람의 모습을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 같았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라라랜드의 시간이 흐른다. 배우를 꿈꾸는 미아(엠마 스톤)와 재즈를 지키고 싶은 피아니스트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의 꿈도 흐른다.





서로의 미래를 응원하며, 애틋하게 사랑하는 미아와 세바스찬. 둘 사이에 오가는 대화가 좋아서, 소설 속 문장을 필사하듯 노트에 옮겨 적었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꿈 앞에서 "우리는 어디쯤 있는 거지?"라고 묻는 미아에게 세바스찬은 담담히 말한다. "그냥 흘러가는 대로 해보자." 꿈을 향해 나아갈 때 끝을 모르는 우리는 얼마큼 왔는지, 어디쯤 있는 건지 알지 못한다. 거듭된 실패에 지쳐서, 상처 입기 일쑤다. 영화 속 미아처럼 '하겠다는 의지만 갖고 이룰 수 없는 헛꿈을 꾸는 그런 사람들 중 하나가 아닌지' 묻고, 또 물으며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겨울은 공평하게 온다. 라라랜드의 미아와 세바스찬은 꿈을 이뤘고, 영화 밖에는 여전히 실패하는 내가 있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크고 작은 실패의 경험 덕분에 실패를 해석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실패를 하나의 결과로만 보면 다시 시도할 용기가 생기지 않는다. 수많은 실패들이 쌓여야 원하는 내가 될 수 있다고 생각을 바꾸면 오늘의 실패는 '작은 성공'이 된다. 글을 짓는 나는 아름답고, 정확한 문장을 쓸 수 있기 꿈꾸지만, 거매일 실패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은 성공을 쌓는 중이라고 (억지로) 믿으며 그냥 흘러가는 대로 해본다. 그것도 잘 안될 때는 '마감'이 있는 곳으로 걸어가서 함께 다.



우리가 사랑한 영화들 안에서, 지금처럼.


http://naver.me/x7tGlNH7

* 네이버 오디오 클립 "우리가 사랑한 영화들"과 함께하며 쓰는 글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칠판에는 나눗셈이 쓰여 있어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