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은실 「꽃 찾으러」, 『기억의 목소리』(문학동네, 2021)
그러나 오누이가 묻혀 있는 그 옴팡밭은 당신의 숙명이었다. 깊은 소(沼) 물귀신에게 채여가듯 당신은 머리끄덩이를 잡혀 다시 그밭으로 끌리어갔다. 그렇다. 그 죽음은 한달 전의 죽음이 아니라 이미 삼십년 전의 해묵은 죽음이었다. 당신은 그때 이미 죽은 사람이었다. 다만 삼십년 전 그 옴팡밭에서 구구식 총구에서 나간 총알이 삼십년의 우여곡절한 유예를 보내고 오늘에야 당신의 가슴 한복판을 꿰뚫었을 뿐이었다.
- 현기영 『순이 삼촌』(창비, 1979) 중에서
제주의 눈부시게 아름다운 풍경은 어쩌면 4.3 영령들의 피의 대가로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제주에 너무 많은 빚을 졌다. 무언가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기억의 목소리 작업은 그렇게 무거운 마음으로 시작되었다.
- 고현주 「봉인된 시간의 기억과 마주하다」,『기억의 목소리』(문학동네, 2021) 프롤로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