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정의를 아는 어른
서준아.
어제저녁 우리는 구구단 외우기 미션을 했지. 방학 동안 누나가 구구단을 외워야 하는데 억지로 시키고 싶지 않아서, 게임을 하듯 해봤어. 2단부터 9단까지 미션을 통과하면 소원 쿠폰 한 장! 엄마 앞에서 "도전!"을 외치며 즐겁게 구구단을 외우는 너희를 보면서 뿌듯했지.
여섯 살 서준이는 수에 대한 감각이 좋아서 엄마, 아빠는 때때로 놀라. 두 자릿수, 세 자릿수 덧셈을 암산으로 풀어내는 걸 보면 신기하고, 기특하더라. 그렇지만 거기까지야. 혹자는 아이에게 가능성을 발견하면 부모가 관심을 가지고 아이의 잠재된 능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사교육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하더라. 엄마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아.
물론 공부를 잘하면 좋지. 훌륭한 일이라고 생각해. 부모로서 자랑스러울 마음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렇지만 세상에는 공부를 잘하는 것보다 중요한 게 많단다. 엄마는 서준이가 어떤 직업을 갖게 되든 책임감 있게 일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 자신이 하는 일의 가치를 충분히 알고, 정성을 다해 살아가는 사람들이 존경스러워.
조금 더 욕심을 낸다면 정의로운 어른이 되었으면 해. 강한 사람에게 주눅 들지 않고, 약한 사람들을 지켜줄 수 있는 그런 사람 말이야. 서준이가 아빠를 닮았으면 좋겠다. 아빠는 강한 사람에게 굴하지 않고, 약한 사람에게는 더없이 사려 깊으니까. 엄마는 아빠의 그런 성품이 멋지고, 대단해.
얼마 전에 읽은 조정래 작가의 <천년의 질문>이라는 소설에서 옳지! 싶은 문장을 만났어. 소설 속에서 어느 전라도 할머니의 인터뷰였는데 옮겨볼게.
우리 손주가 공부하고 있으면 내가 말해. '아가'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다 도둑놈 되드라. 맴 공부 해야 쓴다. 사람 공부 해야 쓴다. 그러코 말해. 착실허니 살고, 넘 속이지 말고 넘의 것 돌라묵을라 허지 말고 니 심으로 땀 흘림서 벌어묵어라와. 내 속에 든 것 지킴서 살아야 써. 사람 속 짚은 것으로 허는 짓이 달라지는 벱잉께. 지 맴을 잘 지켜야제 돈 지킬라고 애쓰덜 말아라 잉. 아이고, 이쁜 내 강아지!!"" (381쪽, 천년의 질문3)
구구단으로 시작한 글이 엄마의 소박한 철학으로 이어졌네. 서준아, 오늘 엄마가 쓰는 편지는 어쩌면 다짐일지도 몰라. 다른 사람의 시선과 사회에서 말하는 성공의 법칙에 혹하지 않겠다는 다짐! 흔들릴 때마다 이 글을 나침반으로 삼아 다시 방향을 잡을게.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정의를 아는 어른으로 길러내는 게 엄마의 역할이라는 걸 잘 알고 있어. 우리 서로 응원하며, 진심으로 살아가자. 사랑해, 서준아!
2019년 뜨거운 여름을 통과하며 아이들에게 매일 쓴 편지를 책으로 만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