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아버지 생신

주말도 없이 반복되는 노동이 얼마나 힘드실까

by 기꺼움

서준아.


오늘은 외할아버지 생신이야. 우리 네 식구와 이모 식구까지 가족 모두 모여 저녁을 먹고, 생신 축하 노래를 불렀어. 이제 막 100일이 된 이모의 둘째 딸, 다온이 까지 함께여서 더욱 의미 있는 시간이 됐어. 우리 서준이는 할아버지를 많이 닮았어. 어깨도 넓고, 얼굴도 훤하게 잘생겼지.




서준아, 오늘은 할아버지 이야기를 해줄게. 할아버지는 말로 표현은 안 하시지만 마음은 여리고, 따뜻하신 분이야. 20대 후반에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벌어온 돈으로 할머니와 신혼집을 차리셨고, 그때부터 40년 가까이 굴착기 기사로 일하셨어. 전국 곳곳에 건설 현장을 다녀야 해서 1~2주씩 집을 비우신 적이 많았지. 가끔 집에 오시면 별말씀 없이 앉아 신문을 읽거나, 텔레비전을 보셨어. 엄마는 그런 할아버지가 무서웠어. 워낙 무뚝뚝하셨고, 할머니가 항상 할아버지의 권위를 세워주셔서 더 그랬던 것 같아.


현장과 거리가 멀지 않을 때는 집에서 출퇴근하셨는데, 매일 새벽 5시면 일터로 가셔서 어둠이 내려앉을 때 집에 오셨어. 이른 새벽 부엌에서 들리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말소리에 깨야할 시간을 짐작하곤 했지. 할아버지는 평생 주말 없이 일하셨어. 비가 오고, 눈이 와서 작업을 할 수 없는 날에나 할아버지는 겨우 쉬실 수 있었지. 토요일, 일요일도 없이 반복되는 노동이 얼마나 지치는 건지, 엄마는 직장에 다니고 나서야 알았어.


예순을 훌쩍 넘긴 나이지만 할아버지는 여전히 일을 하셔. 혹시 아프실까 봐 염려돼 걱정 섞인 말을 건네면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시지.


일이 없어서 못하는 세상에 돈을 벌고 있으니 감사해야지. 아빠는 괜찮다.



수 십 년 동안 누구보다 성실한 하루하루를 보내신 할아버지 덕분에 엄마와 이모가 아쉬움 없이 자랐다는 걸 알아. 너무 늦게 깨달았지만 이제라도 이해할 수 있게 돼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엄마는 할아버지께 더 살뜰한 딸이 될 거야. 우리 서준이도 할아버지와 정답게 대화하는 손자가 되어 줄 수 있겠지? 지금도 잘하고 있지만!


2019년 뜨거운 여름을 통과하며 아이들에게 매일 쓴 편지를 책으로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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