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의 존중

두 사람이 부부의 연을 맺고, 생을 다할 때까지 살아가려면

by 기꺼움

여보.


오늘은 당신에게 편지를 써요. 매일 아이들에게 편지를 쓰며 소리 없이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아 고이 담아두는 듯한 기분이 좋아요. 그러다 알 수 없는 이유로 마음이 뻥 뚫린 것처럼 허전해지면 당황스럽기도 하지만요.




마음이 그럴 땐 책을 읽어요. 책 속의 세계에 들어가 꼭꼭 숨으면 현실에서 겪는 공허함을 달랠 수 있더라고요. 제가 유독 책을 살 때만큼은 흥청망청이 되잖아요. 퇴근하고 집에 돌아왔을 때 책장에 꽂힌 책을 보면 마음이 편안해져요.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 읽어야 한다는 게 당신이 가진 생각이지만, 책을 소장하길 원하는 내 취향을 존중해줘서 고마워요.


전혀 다른 시간을 살아온 두 사람이 부부의 인연을 맺고, 생을 다 할 때까지 살아가려면 각자의 취향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 중요한 것 같아요.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을 값지게 생각해줘서 고마워요. 내가 쓴 글의 독자가 되어주고, 근사하다고 말해줘서 안심이 돼요.


이런 비유가 맞을지 조심스럽지만, 삶을 포기하려는 사람에게 손을 내미는 한 사람이 있다면 다시 살아갈 결심을 한다고 하잖아요. 세상 모든 이가 내가 쓰는 글을 하찮게 생각한다고 해도 당신 한 사람이 다감한 시선으로 봐준다면 계속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당신의 칭찬을 받고, 기운을 낸 문장은 백지 위에서 가벼운 걸음으로 총총 나아가요.




요즘 당신이 읽는 소설을 따라 읽어요. 같은 책을 읽고 대화하면 생각이 가지를 뻗어 풍성해지는 것 같아요. 당신이 하얀 종이 위에 연표를 적어가며 책의 역사적 배경을 설명해주던 어느 새벽은 가끔씩 떠올리는 따듯한 기억으로 남았어요.


마당이 너른 집. 해가 잘 드는 2층 서재에서 책을 읽고, 홍차를 마시며 대화하는 노년의 부부가 그려져요. 그런 미래를 상상하면 나이 드는 일도 두렵지 않아요. 그때는 서른여섯 내가 쓴 편지가 풋풋하게 느껴지겠죠? 여보 우리 지금처럼 서로의 취향을 존중하면서 행복하게, 건강하게 살아요. 많이 사랑해요.



2019년 뜨거운 여름을 통과하며 아이들에게 매일 쓴 편지를 책으로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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